3년 8개월, 36차례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 끝낸 박승일·박용욱씨와 네 자매 월간산 글·손수원 기자 입력
↑ [월간산]3년 8개월간의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친 `딸내미랑 백두대간 종주'팀.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승일, 박영옥, 박혜지, 박희라, 박희인, 박혜인.) |
드디어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3년 8개월간의 장편 드라마였다. 중학교 1학년이던 큰언니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던 두 막내는 내년에 중학생이 된다.
박희인(16, 진주 삼현여고1)·박희라(13, 진주 천전초6), 박혜인(16, 서울 개포중3)·박혜지(13, 서울 개원초6), 이 네 자매가 지난 11월 3일 진부령을 마지막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다. 3년 8개월, 총 36차에 걸친 기나긴 여행이었다. 어른도 쉽지 않은 730여km 기나긴 길을 걸어낸 것부터가 대견하거니와 3년여의 세월을 초지일관, 처음의 결심을 흐트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냈다는 점은 더더욱 칭송받을 일이다. 이들 네 학생이 < 월간산 > 편집부를 찾았다.
혜인양과 혜지양은 용산구청에 근무 중인 '뚜버기' 박승일(47)씨의 자녀들이고, 희인양과 희라양은 진주 경상대학교에 근무 중인 '객꾼' 박영옥(47)씨의 자녀들이다. 서울과 진주. 전혀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뭉쳐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어른들끼리는 원래 알고 있던 사이였어요. 백두대간 종주 동호회에서 만나 자주 함께 산행을 했죠.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제가 먼저 박영옥씨에게 제안했어요. '딸내미들하고 백두대간 종주를 하자'고요."
아버지들이야 원래 산꾼이라 백두대간 종주가 어렵잖겠지만 어린 딸들을 데리고 험한 산을 나서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우선 어머니들의 반대가 가장 컸다.
엄마들, "택도 없는 소리 말라"
"애들 엄마한테 넌지시 말을 꺼냈더니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꾀를 냈죠. '아이들 지리과목 공부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지나는 곳마다 그 지역의 특산물과 역사를 공부시키겠다'고 약속했죠. 그때서야 '그럼 한 번 해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박영옥씨가 먼저 허락을 받았고, 이어 박승일씨도 어렵사리 허락을 받았다. 이리하여 어른 둘, 아이들 넷의 '딸내미랑 백두대간 종주'팀이 꾸려지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아빠 물론 첫째, 둘째 모두 나이가 동갑이다. 딸들의 이름도 참 비슷하다. '공통점이 많으면 운명'이라 했든가.
↑ [월간산]1 백두대간 종주의 첫 산행지인 고남산 정상에서 기념사진. / 2 박영옥씨가 일하는 진주농장에서 즐거운 한때. / 3 10차 추풍령 산행을 마치고 나서. / 4 텐트 안에서 맞이한 생일. |
첫 번째 종주는 2009년 3월 14일에 이뤄졌다. 구간은 여원재~복성이재. 원래대로라면 진주에서 가까운 지리산에서 시작해야 했지만 마침 지리산이 통제기간이었고 처음부터 어려운 구간을 걸으면 십중팔구 아이들이 다음 산행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사는 박승일씨 팀이 남원으로 내려왔다. 막내 혜지는 몸이 아파 첫 산행을 함께하지 못했다. 매요마을에서 대망의 첫 산행이 시작되었다.
"배낭을 메고 가는 모습을 보니 귀엽고 우스웠어요. '쟤들이 뭘 알고 예까지 따라와 걷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멋모르는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 고생시키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했어요."
박영옥씨는 "첫 산행이라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다"며 "그래도 끝까지 완주해 준 아이들이 무척 기특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사히 1박2일간의 첫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이후 4월 4일(2차) 복성이재~무룡고개, 5월 2일(3차) 성삼재~여원재, 6월 12일(4차) 무령고개~육십령~월성치 등을 이어가며 종주를 계속했다.
아이들에게 종주하면서 힘든 점을 물어보자 기다렸던 듯 여기저기서 '귀여운' 불평불만이 쏟아진다.
"씻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아빠는 아무데서나 씻을 수 있지만 우리는 안 그렇잖아요. 근데 이상한 작은 계곡에서 목욕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물도 '쫄쫄' 나오는 그런 데서요. 또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하고 좀 놀고 싶고 한데,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산으로 데리고 가요." -희인-
"길에서 소리 지르는 거요. 우리는 걷고 있는데 자꾸 더 빨리 걸으라고 그러고…. 좀 싫었어요." -희라-
"밥 먹는 게 힘들었어요. 추울 때는 밥이 막 얼잖아요. 그거 먹는 것도 힘들었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고기만 먹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무리 고기가 좋아도 나중엔 질렸어요." -혜인-
↑ [월간산]5 "이거 우리가 들어버릴 거예요!" 14차 속리산 산행 때 바위 아래에서 재밌는 포즈를 취한 아이들. / 6 아이스크림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아이들. / 7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야영을 하는 것은 기본. / 8 아빠가 잡은 뱀을 보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 산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
불만의 소리가 거세다. 불만이라기보단 그동안 섭섭했던 것들을 애교 있게 쏟아내는 것이다. 물론 아빠들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산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어요. 당장은 조금 섭섭하고 짜증났겠지만 그런 질서가 있었기에 아무 사고 없이 백두대간 종주를 마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빠들이 소리 지르고 한건 파이팅하자는 의미지…."
'파이팅'이란 말에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아빠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빠와 딸들이 이렇게 허물없이 재밌게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오랜 시간 함께 산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부녀들 간의 지극한 사랑이리라.
폭설에 길 잃은 위험한 순간도
중간에 위기도 있었다. 한 번은 박승일씨가 다리를 다쳐 함께 종주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박영옥씨 혼자 아이들을 이끌기에는 벅찬 상황. 이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들을 도와준 이가 각 지역의 산악회 회원들이었다. 차량을 동원해 주는 것은 물론, 산행 가이드까지 자청하며 이들을 도와주었다.
정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대관령에서 길을 잃었던 순간이다. '대관령'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일제히 아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대관령에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다. 선자령 전망대까지는 관광객도 많고 수월하게 올라갔는데, 전망대에서 매봉까지 가는 길은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게다가 화이트아웃(눈이 많이 내린 뒤 눈 표면에 가스나 안개가 생기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현상)으로 아무리 지도를 봐도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길을 잃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목장 안을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고 한다.
↑ [월간산]눈밭에 쓰러진 아이들. 아이들 머리맡의 `SOS' 표시가 재미있다. |
이런 힘든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은 아빠들을 믿었고, 아빠들도 아이들을 믿었다. 늘 그렇듯 고난의 상황에선 서로의 믿음이 가장 큰 무기다.
아이들은 산을 타면서 아빠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던 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빠들도 마찬가지다. 박용욱씨는 공을 아이들에게 돌렸다.
"사실 저도 처음엔 한두 번 하고 끝날 줄 알았어요. 아내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긴가민가했었지요. 몇 번 산행이 이어지고 나니 우리들 사이에선 '반드시 해낸다', '분명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 이후론 한 번도 실패하리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죠. 종주에 성공하고 나니 아이들이 정말 대견합니다."
믿음으로 오른 백두대간
박승일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해준 것 같아 뿌듯했다.
"부모로서 뭘 선물해 줄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게 산이고, 백두대간이었어요. 함께 산행하면서 집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주고받았어요. 부모 입장으로서 딸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도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제 마음을 알아주니 더욱 감사했죠. 나중에 혜지가 '아빠는 딸바보'라고 했을 때 정말 많이 감사했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이제 '딸내미랑 백두대간 종주'는 끝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희인양과 고등학교 입학을 하는 혜인양은 공부에 더욱 신경 쓰게 될 것이다. 중학생이 되는 희라·혜지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빠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앞으로 사는 동안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치더라도 아무 탈 없이 잘 이겨내리라는 것을 말이다. 지난 3년 8개월, 네 아이들은 백두대간을 오르며 '작지만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바위'가 되어 있었다.
↑ [월간산]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후 기념촬영. 박승일 씨가 플래카드를 만들어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
'희인,희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7년 1월 23일 무주리조트 (0) | 2012.12.14 |
---|---|
2005년 개천예술제 (0) | 2012.12.14 |
희라 올린 사진들 (0) | 2012.12.09 |
희인이 장난사진, 희인이 자전거에 희라 태우고~ (0) | 2012.11.19 |
서울 '산'誌 인터뷰 길 (0) | 2012.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