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界,郡界,道界

진주시계 5구간

객꾼 2012. 12. 28. 14:25

 

 

진주시계 5구간

 

 

 

산길 : 영금교~두량저수지

사람 : 객꾼 학봉 조은산

거리 : 18.6km / (누계 80 /167)

 

 

구간거리

영금교(성산리)~1.3~만취산~3.4~봉대산~8.3~돌장고개~3.5~무선산~2.1~두량저수지  /  18.6km

(봉대산에서 무선산까지 15.5km 낙남정맥과 겹침)

 

Cartographic Length = 23.6km Total Time: 08:30

 

 

05(영금교~두량지).gpx

 

 

 

 

 

관습법인지 불문법인지, 저절로 굳어버린 순서에 따라 ‘아까 맹쿠로’ 그 시각에 일어나 제일식당 아침밥에 영신떡집 점심을 싸 넣었다. 그런데 진행되는 식순을 가만히 짚어보니 진주사람 객꾸이 요청에 따라 길잡이 도우미로 나선 내가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내가 지를 모시고 댕기는 꼴이라 어째 주객이 전도된 거 같다.

 

새벽에 저그 집까지 모시러 갔다가, 산에서도 앞장서서 가시덤불 잡풀 다 걷어내며 길을 터고, 산행 마치고 또 집에 모셔드리고야 상황이 종료되니. “내가 니 시다바리가?”

 

 오늘 구간을 하고나니 진행율이 50% 정도라 이제 배를 한번 내밀어 볼까?

“바쁘기도 하고 별 재미도 없으니, 니 혼자해라... ” 하면 어떻게 나올랑가... 일당을 쳐 줄랑가?

 

그런데 실상은 지보다 내가 더 빠졌다. 무슨시계라고는 처음해 보는데, 마루금만 줄곧 타는 지맥보다는 강을 건너고 주변 마을을 지나고 하는게 지맥과는 또 색다른 맛이 있는기라. 박성태님이 지맥으로 대박(?)낸거라면 나는 시계로 한번 벌려보까?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시, 군, 읍, 면경계를 출시(!)하면 좀 팔릴까?

 

심각히 생각해봐야 될 일이다. 어디 전문기관에 사업성에 관한 용역이라도 맡겨 봐야겠다만, 일단은 벌려놓은 진주부터 마무리 짓자. 당연히 지난번 날머리가 이번 들머리가 된다. 중앙시장에서 '성산리‘를 내비에 찍으니 서진주로 올려 연화산IC에서 내린다. 전에도 문산에서 올리고 진성에서 내리고, 고속도로를 탔는데 그래봤자 한 구간의 톨게이트 요금 1500원짜리다.

 

 

 

 

 

 

 

07:30 성산리 덕계마을

07:52 만취산

09:16 ×347 (낙남정맥)

09:36 봉대산

10:27 ×295

10:56 △310.0

11:19 ×352

11:33 임도

12:19 임도끝

13:14 돌장고개

14:32 무선산

15:20 대전-통영고속도로

16:00 두량지

 

 

 

 

 

 

 

 

성산리 덕계마을

금곡면사무소 옆을 흐르는 영천강을 따라가던 시경계가, 영금교를 지나고는 만취산 능선으로 오른다. 진주시 금곡면 성산리.  강변에서 곧바로 산비탈로 오르는 길은 없어 덕계마을쪽으로 조금 물러서면 [溪庵亭] 표석이 있고 산으로 올라가는 수렛길이 있다. 순진무구한 객꾼은 그 표석을 보고 정자를 찾는다. 올라가면 암자(庵)도 정자(亭)도 아닌 ‘계암처사거창윤공’ 묘소다.

 

 

 

 

계암정 표석

 

 

묘 뒤로는 밤나무밭이고, 이리저리 나뭇가지를 밀치며 올라가니 왼편에서 올라온 묵은 길이 보인다. 능선 왼편으로 이어지는데 이게 어디서 올라온 길인가.

 

 

잠시 올라가니 우측 덕계마을에서 올라 온 듯한 수렛길을 만난다. 이 수렛길은 더 뚜렷해지다가 만취산 직전에서는 만취산을 무시(!)하고 그대로 직진한다. 우리는 뚜렷한 길을 외면하고 없는길 골라가며 정상부로 올라간다.

 

 

 

 

 

 

 

 

 

 

만취산

 

 

만취산(脕翠山 ×169)

특이한 이름이 궁금해 올라왔지만 색다른 아무것도 없이 잡목에 묻힌 봉우리일 뿐이라.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콜농도 0.1%이상을 만취상태라 하는데, 그거는 ‘漫醉’이고 여기는 ‘脕翠山’이다.

 

 

취字가 5만 지형도에는 ‘晩聚’로 표기되어 있는데 둘 다 쉬운 글자는 아니다. 옥편을 찾아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술꾼 둘이는 저그한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막걸리병을 꺼낸다. 여덟시가 다 되었는데도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는 날씨라. 구름이 잔뜩낀 우중충한 날씨다.

 

 

 

 

만취산에서 내려선 첫 안부에 TV안테나와 케이블이 남쪽으로 내려간다만 그 용도를 이미 잊은듯 하다. 스카이라이프가 있는데 요즘 저거 쓰는 사람 있나.

 

 

 

 

 

×294봉 직전에서 곧바로 오르는 길도 있고 왼편으로 가는 길도 있다. 힘든 오름이 싫어 왼쪽 사면길로 들어가고 보니 영천강 봉림리로 내려가는 길이라. 봉우리로 올라서니 직전에서 올라온 뚜렷한 길이 있다. ×303봉 역시 길은 왼쪽 사면으로 가면서 길은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

 

 

 

 

 

 

홍지네고사리

잎이 홍색을 띄어 홍지네고사리라 부른다. 남부지방과 제주도, 울릉도 등지의 그늘지고 약간 건조한 능선의 숲 속에서 자라는 상록다년초이다. 원산지는 한국이고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송전철탑  만난 기념으로 또 한잔하나. 두 시간이 채 안 걸려 갖고 온 막걸리 다 비우겠다.

 

 

낙남정맥을 만나다

 

 

 

×347

사천시에서 세운 [낙남정맥 등산안내도]가 있다. 낙남정맥 양전산에서 1km 지나고, 봉대산 700m 못 미친 지점. 낙남정맥 마루금이고, 진주시 금곡면, 고성군 영현면 상리면, 사천시 정동면이 쪼개지는 4면봉이 된다.

 

 

 

부련이재부터 하동 북천면까지 사천시를 지나는 낙남정맥 등산로와 우리가 갈 진주시계도 잘 표시되어 있다. 셋 모두 지난 추억을 되살려 보지만, 기억을 해 내는 사람 아무도 없다. 처음 와 보는 듯 생소해 보이는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객꾼은 양전산쪽으로 방향을 잡고 간다. 이 사람 도데체 백두대간 3번 한 사람 맞나?

 

 

 

 

2002. 12. 19일에 지나갔으니 딱 10년만이다. 산행기를 찾아보니 바로 그날이 16대 대통령선거일이었네. 새벽 6시 투표소 문 열리기를 기다려 한 표 찍고 달려왔는데, 그 때 찍은 양반은 대통령이 됐는데, 내일 모레 찍을 양반은 대통령이 될랑가 모리겠다.

 

 

 

 

 

널찍한 정맥길을 따라가니 두 번째 송전철탑이 있다. [사천-개양 51번] 번호표가 달려있는데 여기는 배낭 내릴만한 위치가 아니라 그냥 지나간다.

 

 

 

 

송전철탑에서 10분, 봉대산 정상 직전에 이정표가 있다. [삼베마을 주차장 3.5km] 삼베마을은 죽곡리에 있다.

 

 

 

 

죽곡 삼베마을

금곡면 죽곡리는 대나무가 많아 ‘죽곡(竹谷)’, 우리말 옛이름은 ‘대실’이다. 예부터 죽곡에서는 아낙네들에 의해 삼베길쌈 전통이 내려왔고,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온 마을이 삼베길쌈을 했다. 들녘엔 삼밭이 그득했다. 현재는 20가구가 채 되지 않는 농가만 명맥을 잇고 있는데, 대마는 허가를 받아야 재배가 가능하므로 경찰서에서 수시로 불법유출을 감시한다.

 

 

 

 

 

 

봉대산 (鳳臺山 ×403)

잡풀이 수북하게 덮힌 넓은 헬기장을 지나면 길에서 우측으로 삐져나간 봉우리에 아담스런 정상석이 있다. 바닥이 고정되지 않아 흔들린다. 정상석 만난 기념으로 기념사진 한 장 남긴다.

 

 

 

 

봉대산(鳳臺山)은 진양, 사천, 고성 3개 군을 포옹하여 웅장하게 솟은 명산이다. 죽곡에 위치하였으나 이 산은 금곡면의 주봉이며 전설도 많다. 죽곡에는 옛날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면 그 대밭에는 봉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다. 그 후 천지개벽이 있자 봉은 봉대산 꼭대기로 날아가 앉았다. 그 후 물이 빠진 자리에는 대나무도 없어지고 깊은 골짜기가 이루어져서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봉이 앉아있는 밑이라는 뜻에서 여기를 봉하죽임이라 불렀다 한다. 그 이후 대나무가 있는 골이라는 뜻에서 죽곡으로 불리어 오늘에 이른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마을 어귀에는 대나무가 있다.

 

 

 

 

 

 

 

진주에는 鳳臺山, 飛鳳山, 실봉산(?), 태봉산(?) 등 봉황새 鳳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비봉산이 예전에는 대봉산이었고, 상봉동에는 ‘봉알자리’가 있다.

 

 

봉알자리 전설

진주 강씨 집안에서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고 대봉산(비봉산) 밑에 웅거하여 권세를 부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대봉산 위에 봉암이 있기 때문이라고 일컬었다. 조정에서 몰래 사람을 보내어 봉암을 깨어 없애니 봉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날아간 봉을 다시 부르려면 알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평지에 흙을 쌓아올려 산과 같이 되어 있으며 그 복판이 패여있는 곳이 있는데 마치 새의 알자리 같이 되어 있는 것이 ‘봉알자리’다.

진주시의 상징을 나타내는 市花는 석류꽃, 市木은 대추나무, 市鳥는 백로인데 봉황은 실존하는 새가 아니라 상상의 새라서 그랬나.

 

 

통나무를 받친 급한 계단길을 내려가, 비싼(!) 해발 100m를 까먹으면 편편한 안부가 나온다. 지도상 ‘객숙치는’ 앞 봉우리에 표기되어 있지만 여기가 객숙치다.

 

 

 

 

객숙치(客宿峙 300m)

지금에야 넘어 다니는 사람도 없을테고, 흔적도 찾기 힘들지만 예전 지도(1917 조선지형도)를 보면 사천 객방동에서 진주 죽곡리로 통하는 뚜렷한 길이 보인다.

 

객숙치(客宿峙) :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대실마을에서 남쪽의 사천군 정동면 소곡리 상객방(客坊, 옛날에 철을 캐던 야철지가 있던 곳이라 외지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취락을 이루어 살았다 하여 객방이라 불렀다 함)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골(객숙골)이 하도 깊고 길어 고개를 넘으려면 자고 넘어야 했기에 객숙치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1917 조선지형도

 

사천 객방에서 진주 죽곡으로 넘어가는 뚜렷한 길에 '객숙치' 표기가 있다.

 

 

현재 지형도

 

객숙치 표기가 왼쪽으로 이동했다.

 

 

 

 

 객숙치에서 올라선 능선

 

 

 

낙남정맥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부련이재2.67 돌장고개8.33km]

완만한 능선길이 우측(북)으로 휘어가다가 ×348봉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돌아보면 봉대산이 남쪽에서 본 것과는 반대로 뾰쪽하게 솟아있다.

 

 

×254을 넘고 또 한 봉우리 넘은 안부에 특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정면에서 보면 강아지 머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변에 흩어진 돌들은 울타리를 쌓았던 흔적일까.

 

 

 

 

 

 

간벌을 적당히 해놓아 숲이 훨씬 건강해 보인다. 날씨만 맑으면 조망도 있으련만 우중충한 날씨는 비라도 내릴 듯하다. [삼베마을 주차장 2.5km] 이정표를 지나면 ×295봉이다. 배낭 내림과 동시에 막걸리병이 나온다. 주거니 받거니 20분이 흐른다.

 

 

 

 

 

 

 

 

△310.0

넓은 헬기장이나 손을 안봐 잡풀이 수북하게 덮혔다. 길 왼쪽에 풀더미 속에 숨어있는 삼각점을 찾아냈다. 납작하게 문드러져 글씨를 알 수 없다

 

△310.0m

 

 

 

 

 

 

 

 

죽곡리를 둥글게 감싸며 돌아가는 산길이다. 길게 내렸다가 다시 오르면 돌담장을 두른 묘가 있고, ×352봉에서 왼쪽으로 꺾어가면 낙남정맥 [부련이재6.87 돌장고개4.33] 이정표와 의자가 있는 305봉에 올라선다. 왼편으로 사천시 정동면에서 사천읍의 경계가 갈라지는 삼면봉이 된다. 사천시의 낙남정맥 안내도에는 이 봉우리를 ‘어정산’이라 했더라. 10분간 휴식이다.

 

 

 

우측 아래로 임도가 보인다. 임도파가 임도를 외면하랴, 임도에 내려서고 여기부터 돌장고개 직전 채석장 안부까지 50분간 3km 임도행이다.

 

 

 

 

 

임도탐구

×256봉을 지나고 임도는 능선 서편으로 넘어간다. ×219봉 직전 파란 물탱크 하나 있는 임도 삼거리에서 정면은 219봉이고, 전봇대와 전깃줄이 가는 우측길로 간다.

 

 

 

 

 

 

여름이면 아주 넓은 그늘을 만들어줄 만한 한 묶음의 풍성한 서어나무와 그늘에 어울리는 나무의자가 놓여있다. 아랫마을이 ‘금곡’인데, 진주 금곡면이 아니라 사천읍 금곡마을이다 골짜기로 박곡저수지가 보인다. 임도는 왼쪽으로 휘어가고, 여기서 우측 산길로 올라가는게 맞겠다만 임도파들은 계속해 임도를 고수한다.

 

 

 

 

 

 

우측에 리본들이 붙어 있으나 무시하고 임도를 고수

 

 

×232봉 왼쪽으로 약간 벌여졌다가 다시 붙으면서 임도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임도는 박곡소류지로 가겠다. 

왼쪽 나무 사이로 채석장이 보인다. 임도가 왼쪽으로 U턴하듯이 꺾어 내려가는 지점에서  우측 숲을 뚫고 정맥 마루금에 올라섰다. 정맥 리본들이 보이고 밤나무밭이다.   점심을 먹고 간다(12:20~12:47)

 

  

 

밤나무밭에서 점심

 

 

 

 

 

 

금곡면 두문리

 

 

 

밤나무밭 안부에 내려서면 왼쪽은 채석장이고 우측은 금곡면 두문리 석계소류지다. 정면 능선을 피해 왼쪽 수렛길로 올라가니 채석장에서 산을 깎으면서 절개지에 낸 길이다. 채석장이 내려다보이는데 돌장고개쪽은 돌을 깨는 작업장이고 바로 아래는 통나무를 파쇄하는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산 절개면에 나있는 수렛길을 따라 내려가면 채석장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극동메이저(주) 회사이름이 보인다

 

 

 

벌목 덩어리를  위로  넣으면 가루가 되어 나온다.

 

 

 

 

저런 돌산 하나 있으면 노다지다...

 

 

 

 

고속도로

 

 

 

돌장고개(남쪽)

정확히는 시경계에서 서쪽으로 350m 내려온 지점이다. 시경계선을 정확히 따라 내려오면 고속도로라 어차피 이쪽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간판

 

 

 

대전-통영고속도로 통과

 

 

 

돌장고개

 

 

 

돌장고개 (95m)

사천읍에서 진주로 들어가는 1002번 지방도로. 여기가 돌장고개다. [진주시 금곡면]을 알리는 도로 경계판과 낙남정맥 이정표 [부련이재11.2 무선산2.9km]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문제가 있다.

고갯마루가 편편한 완경사지이고, 북쪽으로 작은 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우측능선이냐 좌측능선이냐 하는 것인데, 지도에 시경계는 우측능선이고 이정표와 등산로는 좌측능선으로 올라간다. 결국 가운데 골짜기의 물이 어디로 흐르느냐 하는것이 답이 되겠는데, 바짝 마른 겨울철에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소방차를 한 대 동원해서 골짜기에 물을 부어보면 사천으로 가는지 진주로 가는지 보이겠다만.

 

10년전에 썼던 산행기와 사진, 지도들을 찾아보니 우측능선으로 오른 듯하다만 정확치는 않다. 또 고속도로가 개설되고 현 1002번 도로도 산쪽으로 밀려 올라간것 같다. 두문리 이정표석은 왼쪽 능선에 있는데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게 아니라 옮기면서 자리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고, 대규모의 공사를 하다보면 작은 골짜기의 물흐름이 바뀔 수도 없지 않겠다는 생각이라.

 

 

내가 내린 최종결론은 시경계선이 표시된 우측능선이 맞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판단은 판단이고, 발길은 디디기 쉬운쪽으로 가는 것이 나으 산행지침이자 수칙(!!)이라. 보이지도 않는 들머리 쑤셔대며 들어 가것나. (그런데 능선에 올라서고 보니 그쪽에서 온 길이 보이더라)

 

 

 

 

이정표 뒤로 올라가면 왼쪽에 큰 돌이 보인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인 [진양두문리 이정표석]이다. 돌 앞면에는 판독이 어려운 글이 음각된게 보이고 옆에 유래가 적힌 안내문이 있다.

 

 

 

 

 

진양 두문리 이정표석(물레돌)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산103-1번지 석계마을, 경남문화재179호. 어느 산인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천태산, 혹은, 청태산의 여장사 마구할머니(靑台山馬駒)가 물레질 할 때 물레돌로 쓸려고 사천 큰골(현 사천시 두량), 혹은, 동해에서 바위 3개(1개는 머리에 이고, 1개는 지팡이로 짚고, 1개는 치마에 담고)를 가지고 오다가, 작은 것들은 고성 영오와 사천 구암 숲에 하나씩 버려 버리고, 치마에 담아오던 큰 바위는 지금의 위치까지 가지고 와 심어두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진양군(진주시)과 사천군(사천시)의 경계석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7년 사천 공군부대에서 이 돌을 뽑아 가자 석삼수(石三壽)씨가 진양군청에 항의해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게 했다고 한다.

 

 

 

조선지형도에 石界洞이 있다, 현재도 석계마을이 있는데, 돌장고개 이름은 석계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겠다.

 

두문리(斗文里) : 두문(斗文), 세경(洗간), 석계(石界, 돌곶이)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드물, 드리무, 입물, 더문, 도무리, 두무리라는 마을 이름이 옛부터 전하여 온다고 한다.

 

석계마을(石界, 돌꽂이 마을) : 진양군과 사천군사이의 경계표시로 큰 돌을 꽂아 돌로 경계표시를 했다는데서 마을이름이 유래.

 

 

 

임도따라 돌장고개까지... 돌장고개 마루금은 시계능선이 맞다

 

 

 

가선대부이조참판 정부인파평윤씨 묘 뒤로 올라간다. 지난 차에는 여러 관직의 묘를 봤지만 오늘은 묘비석도 보기 힘들었고 유일한 관직명이 나오는 묘라.

 

 

가선대부(嘉善大夫).

이 관계에는 동지사(同知事) ·참판 ·좌우윤(左右尹) ·대사헌 ·내각제학(內閣提學) 부총관, 훈련대장, 수어사 통제사 금군별장들이 해당된다. 종2품. 현재의 차관보급. 부인호명은 貞夫人

 

 

돌장고개에서 10여분 걸려 고도를 100m 올리니 능선이다. 우측에서 시계를 따라 온 길도 정맥길 못지않게 뚜렷하게 보인다. 아래쪽에서는 들머리를 찾지 못했는데 올라오는 길이 있었나 보네.

 

이제 여기서부터 무선산까지 3.2km를 한 시간 여 동안 신나게 내뺐다. 객꾼이 돌장고개에서 고만하자며 엄살을 부렸지만 못들은 척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올라붙은지라 더 탄력을 붙여 달렸다. 길도 좋고 고도차도 거의 없어 머뭇거릴 여유도 이유도 없다.

 

 

 

 

 

 

 

무선산 갈림길 이정표

날개 셋 달린 낙남정맥 이정표가 있는데, 뒤로는 돌장고개, 우측 내림길로 진주와룡산, 정면으로 낙남정맥 무선산을 가리킨다. 여기서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것이 와룡산이 처음보는 산이름이라 -예전에는 없었다- 무선산은 당연히 정맥이고, 와룡산 방향을 진주시내로 가는 길인줄 알았다. 셋이서 이정표가 잘못되었느니 엉터리니 해대다가 다시 지도를 짚어보니 무선산은 불과 40m 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고 “찍고 내려와야 하는” 것이라. 결론은, 와룡산이 사람 헷갈리게 했는데, 와룡산은 고시지명도 아니고 지도에도 표기가 없다. 진주의 와룡산은 여기서 9km 거리에 개양역 남쪽, 모산재  내려서기 전에 있는 △93.8봉을 말한다.

 

 

 

 

 

무선산 (舞仙山 277.5m △진주310)

무선산을 코앞에 두고 맞니 안 맞니 갑론을박했으니 웃기는 노릇이다. 딱 스물여섯 걸음 올라가니 스텐판 반짝이는 무선산 표지판에 태극기가 꼽혀있다. 신선이 춤을 추는 산이라. 나도 최신버젼으로 말춤이나 춰볼까.

 

지도를 보니 삼각점표시가 있어 온갖 잡덩쿨 엉켜있는데를 여기저기 쑤셔대다가 삼각점을 찾아냈다. 아까 오전에 310봉에서도 숨은 삼각점을 찾아냈듯이 여기서도 찾아내니 학봉이가 ‘삼각점 달인’이란다. 기분 나쁘지는 않구만. 310봉 보다는 훨씬 새거다. (진주310 1991복구)

 

 

태극기 휘날리며 서이서 사진한방 셀프로 박고 뒤로 넘어간다. 낙남정맥과 이별이다. 어수선한 나뭇가지 밀치며 이제 고생께나 하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뚜렷한 길이 나타난다.

 

 

무선산에서 낙남정맥과 갈라지는 진주시계

 

 

무선산에서 15분 가량 내려와 ×159봉 왼쪽으로 임도가 있어 ‘재수다’하며 따라 갔더니 자꾸 벌어져 도리없이 우측으로 비탈을 치고 올랐다. 더 이상 길은 없다. 여름이면 고생께나 하겠다만 바짝마른 가지라 밀면 힘없이 꺾인다. 폭싹 내려앉은 봉분을 지나고 5분 더 가니 수십길 벼랑의 고속도로 절개지다.

 

 

 

 

 

 

 

 

 

고속도로 절개지

대전-통영고속도로가 아래로 지나가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야 시경계에 더 근접하겠는데, 고속도로 건너편 봉우리는 우회한다 치더라도 두량저수지는 배를 타지 않은 이상 멀리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미리부터 객꾼이 ‘두량횟집’을 염두에 두었기로 두량지는 남쪽으로 우회하기로 하고 점잖게 계단길로 내려간다.

 

 

 

 

 

 

시설점검하는 소방대원

 

 

대전-통영고속도로

계단을 다 내려오니 고속도로 가에 철망울타리가 쳐져있고, 쪽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잠금장치가 도로쪽으로 달려있어 내 손으로는 열지를 못하고 돌아서려 하는데, 우리의 119대원 학봉이 우습게 열어버린다.

 

 

 

고속도로 갓길에 내려서고, 쪽문은 도로 잠가두고, 왕복 4차선의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했다. 여기는 목숨 걸 일까지도 없고 점잖게 걸어서 건널만한 교통량이다. 순찰대에게 잽히면 경을 칠 일이다만.

 

 

사천1터널, 관율저수지

 

 

관율저수지

왼쪽의 [사천시] 도로경계판을 지나 사천1터널 앞에서 관율저수지로 내려갔다. 길을 따라 관율마을을 지나고 두량2리, 두량6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두량지 못가로 붙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이틀전

 

 

 

 

 

 

 

 

두량지

 

 

 

 

 

 

 

두량지

농어촌공사 두량저수지 간판이 있는 주차장에 나오니 바로 앞에 ‘두량횟집’이 있다. 목마른 둘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막걸리 큰통 하나 갖고 온다. 횟집 주인장을 잘 아는지라 다음번 점심은 여기서 먹기로 예약까지 하고, 사천택시(055-852-3100)를 불렀다. 차를 두고 온 들머리인 금곡면 성산리까지 13,000원이다. 등산복 차림의 택시기사님이 우리를 보더니,  -나름대로 산 좀 탔다고- 여기는 낙남정맥이 아닌데 어딜 다녀오느냐 묻는다.

 

객꾼 왈,  "백두대간 세 번에 구정맥에 기맥 지맥 다하고 나니 할게없어 진주시계를 한다..."

하니, 기사님 입을 닫아 버린다.

 

 

 

 

 

 

 

 

 

대전-통영고속도로 건너 두량저수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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