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저녁 인월의 칼바람이 장난이 아녔기로 좀 걱정 되었는데 다행히 날이 조금 풀렸다
백장암에서 만나 금강대로 바로 오른단다
대개의 경우 서진암을 경유하더라만 이제 진주팀은 그런 절차는 생략하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겠지 힘이 떨어져^^~
국보10호 3층석탑이 있는 백장암이다
작년부터 보물이나 국보앞에 붙는 지정번호가 없어졌단다
번호 순서대로 그 가치를 귀한 것으로 착각할까 보아 그렇단다
국보나 보물을 관리하는 부서에서는 나라에서 그 관리예산을 받는가 싶어 이리저리 알아보아도 특별히 고정적으로 받는 건 없는 모양이다
암자 뒷쪽으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잠시 길을 따르는데 마주 내려오는 젊은 스님이 아무래도 예전 동아리 후배같아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 일없다 싶다
참으로 많은 선후배들이 출가를 했는데, 그 반 이상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이들이었다
제법 세월도 지났는데 한소식들은 받았을까?
낙엽진 길을 올라도 미끄러웠으니 미리 아이젠을 하고 가는게 낫지 싶으다는 유랑자님의 권유다
그예다 전날의 과음이 호흡을 더 가쁘게 하기로 잘한 선택이다 싶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산길 삼거리에서 대충 정비를 하고 해장술 한잔도 빠뜨리지 않는다
우리 산행 중 정비항목에는 막걸리 한잔도 필수다
금강대 박터가 정비가 좀 필요하다기로 괭이며 낫이며 톱도 챙겨 올랐다
건디 괭이자루가 요긴한 스틱대용이 되더만
그런데 진주팀들은 어떤 약조가 있어 이렇게 무리를 지어 금강대로 오르고 있나
근간에 다녀온 유랑자님이 좋았다고 하시기로 말 나온김에 가자고 되었을까
어렴풋한 기억에 어느 술자리에서 뜻이 모아졌을때 박으로 참석한다던 인원이 대략 열명은 되었지 싶은데 많이 빠졌나
산욕심이 많은 호박씨는 한마디에 낚여 멀리서도 왔구나
금강대라 하니 금강경에 나오는 한 귀절이 생각난다
수보리야 동쪽 하늘의 넓이를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느냐
없습니다 운운...
저멀리 동쪽하늘 아래로 조망되던 산은 반야봉이라 하였던가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조상들 표현을 빌자면 천길낭떠러지다
금강대가 지리10대 중에서 아직 찾아지지 못했다는데 이제부터 우리는 이곳을 금강대라 부르기로 대충 합의 하였는데, 더 자세히 알고보니 전혀 택도없는 소리다
일단 같이 들어앉을 집부터 짓는게 맞다고 합의되어 짐들을 대충 정리하다가 가져온 곡차나 모아보자 하였다
주섬주섬 모우다보니 재미도 난다
참고로 이 자리에 있던 8인 중 2인은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시고, 3인은 많아야 소주 반병이나 마시는 편이다
그 다음 남는게 셋인데, 그 셋중에서도 한사람은 그날 술을 윽수로 아꼈단다
아침에 일어나니 병반인가 남고 아니 보이기로 나는 일부를 누가 따로 챙겨 넣은 줄 알았었다
일명 금강대는 예전부터 법명은 들어왔던 청화 큰스님과 상좌 성본스님이 오래전부터 수행을 하던곳이라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다(청화스님은 40년간 장좌불와 하신 분인데, 그 중에 누군가가 진짜로 앉아서 주무시나 싶어 문틈으로 살째기 들여다 보았다는 일화도 있다)
성본스님의 기록에 의하면 스님이 백장암 주지로 계실제, 오직 한사람의 조력을 받아 자재를 지고올라 78년도에 이 가건물을 지었다 한다
이후 80년에 안거를 마치고 청화 큰스님이 백장암으로 잠시 들리자, 이 사실을 알리니 그 길로 가보자 하여 올라 온적이 있다한다
그 이후 두분이서 당분간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성본스님과 청화스님의 교계 신분상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얼마전까지 된장단지도 있더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누가 수행을 하기는 하신 모양이다
적석님은 대체적으로 커피내리는 도구를 산에 지고 다니신다
그러고보면 서울에 철화행님은 예전 일본 쿠슈지방을 9박 10일간 자전거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무거운 두발통 케리어 짐 중에 커피 내리는 장비도 섞여 있더만
그렇게 서로 기호에 맞는 차들을 즐기던 시간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당일조들은 한가히 산을 내려간다
저 제일 앞선이 앞에 큰 물통이 놓였고, 이 계절에도 물은 찰랑찰랑 하더라
이제 각자의 집부터 지어놓자 한다
괭이를 가져갈 필요까지는 없더라만 꽤 요긴하게는 썼다
나는 한가지 의문중에 이 산중에서 무슨 빨래할 일이 그렇게 많아 빨랫줄이 저렇게 요란스럽게 쳐져 있나 싶더라
원래는 이 자리에도 가건물이 하나 있었다 한다
지금은 구들장 흔적만 남아있다
각자 집을 짓고, 저 건물안에 텐트 한동 지어져 있는데 그 속을 열어보니 침낭도 있더라
덕불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침낭은 그저그런 싸구려는 아니라며, 자기는 그 텐트속에서 자겠다한다
덕불고 산에 가면 전담이 갈치를 가져오는 것인데, 그 갈치 낚으러 제주도 가는 비용 반만 있으면 우리가 더 배불리 갈치를 먹으며 살것이라는 생각도 가끔씩 한다
우리 여흥을 즐기는 사이 유랑자님은 해지는 모습 담으러 가셨던 모양이다
그날 오후에 잠시 눈이 내렸었나^^
십년도 전에 진주팀에서 50만원 넘게 들여 저 대형쉘타를 구입했다
아마도 공동으로 저 안에 둘러 앉았던 적이 세번인가 많아야 네번일 터이다
농장에다 보관중인데, 나는 저거 서른번도 넘게 썼다
그러니까 그 대부분의 본전은 내가 뽑고 있는 셈이다
물론 보관비는 안 받으니 쌤쌤이라면 쌤쌤이다^^
그렇게 밤은 지나간 모양이다
요즘은 내 폰에 내가 모르는 사진들이 가끔씩 있더라
하산하여 함양 어느 강가인가 산속에서 향어회와 산천어회를 지나다 먹었는데, 다시 찾아가라면 절대 못찾을 집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하면 모자람만 같지 못하다 이 말들이 이곳에 쓰여질 말은 맞는가
사족으로,
이번 서룡산 금강대 다녀온 인연으로 개운조사님 공부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