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선택은 이번주는 어디로 갈까가 아니라 누구 같이갈 사람이 있느냐이다
백방으로 알아보아도 다들 사정이 있단다
심마니님이 주로 혼자서 다니시던데 싶어 전화를 넣어보니 딱 맞다
그래도 목적지는 알아야지
어디로 가시냐니 집에 있으면 우울해서 그냥 운동삼아 산바람 쏘이러 한가한 코스로 가신단다
아침에 약조를 하고 가 보니 음정으로 올라 작전도로를 따라 벽소령대피소로 해서 어디로 내려 오시잔다
이곳도 열번도 넘게 걸은상 싶은데 역시 모르는 길이다
내가 같이가자니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하시더라
뭐 나하고는 맞지 않다나
나하고 맞는게 뭔지 모르겠지만 걸어보니 딱 맞다
아마도 심마니님하고는 단둘이 산행은 처음이지 싶다
내가 열번 간길도 모르는걸 잘 아시는지라 지나는 곳마다 세세히 설명을 해 주신다
저곳은 혹자는 부자바위라고도 하고 혹자는 형제봉이라고도 한단다
그날 하산해서는 우리가 이날 걸은 길을 아주 자세히 적어 카톡으로 보내 주신다
우리 점심 먹은 곳도 괄호를 쳐서 적어 놓으셨다^^
그날 저녁에 알고보니 진주아재님이 바래봉으로 박산행을 가셨던데 전화할 생각조차 안해봤다
그 영감은 코로나로 기겁을 하여 칩거중인지 몇달이 지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건을 놓친게 오랫만에 심마니님과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남아있는 기억은 거진 없다
벽소령대피소가 금방이더만
인적이 없더라
공단직원들 참으로 살판났다
더군다나 오늘부터 경방이니 금상에 첨화로다
날아 댕기던 영감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하고 갑장인데 나도 최소한 저 나이까지는 돌아댕겨야 할 터이다
목디스크엔 대체의학보다 그냥 정형외과로 가는게 효과적이올시다 가셨나예
옆사람은 잘 보이더니만 멀리로는 조망이 흐릿한 날이다
아니 그 코스에서는 별로 조망할 곳도 없더라만
반야봉쪽은 잘 보인다
이 능선으로 거진 기억에 남는 곳이 없더라
무슨 바위라고 하였는데~
삼각고지 너른 곳 중에 잘 마른곳을 찾아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었다
가급적이면 산행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 이날은 술도 챙기지 않았다
객꾼과 술은 동의어이니 당연 내가 반주 정도는 가져왔을 것이라 여긴 참인데 조금 아쉬운 모양이다
밥을 먹고서 근처 바위에 올라 목을 빼니 그래도 천왕봉 능선은 보인다
몇년전부터 지리산 산죽이 죽어간다
다 죽어버리고 대신 그늘사초나 왕창 자라라
건데,
대나무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다 치고,
농부 입장에서는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일시에 죽어 버리는 것은 완전 망할 일이다
허나 대나무 입장에서는 일생의 끝을 꽃으로 피어나게 하고 죽으니 대단히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두고 전공용어로 뭣이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지 않아 교수들에게 조차 물어보아도 그들도 모르겠다 한다
이곳에도 샘이 있더라
평소 같으면 수량이 많을 곳이더만 근간의 가뭄으로 그나마 목을 축일 정도다
진주에 이르니 아직 낮이더라
족저근막염으로 산을 오르지 못해 자전거 타고 있는 산거북이님 불러 그날 낮에 안마신 막걸리 다 채웠다
뽀때님께 산행지 정해지면 전화한다고 하였는데, 잊어먹지 않았다면 예전에 지리99 3대 이빨들 다 모일뻔 한 날이었다
재수좋은 날이다
또 따라갈 곳이 생겼다
한신지곡 동계 계곡산행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초입에서는 박빙일까 약간 우려 했는데 올라갈수록 볼만하더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다
체인식 아이젠을 벗더니 20분 넘게 크렘폰을 착용하고 있다
적석행님은 당연히 내가 막걸리 마시고 있을 줄 았았던 모양이다
이날도 역시 술은 챙기지 않았다
대신 출발전에 시내 콩나물집에서 막걸리 한사발의 반주는 이미 겻들였다
조금씩 얼음이 녹아가는 지절이라 일반 아이젠으로도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이날 처음본 지나님은 이런 산행은 처음이라며 잘 따라 왔다고 몇번이나 노래를 부르신다
나중에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니 족히 수백장은 됨직하더라^^
바쁠일도 없으니 폼은 좀 잡고가자
좀 더 높은 곳은 오를려면 오르겠지만 확보가 아니되니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 사고일터, 그런곳은 대충 돌았다
빙벽 강습
(용량 조절 기능이 있는 모양인데 잘 모르겠음)
오히려 이런 얼음판 산행이 일반 계곡치기보다 훨씬 수월하더라
올라갈수록 좋은 장면이다
시 한수 읖조리고 접은 장면인데 마땅한 글월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신지곡에 폭포가 여덟군데더만
우리는 그런거 열번 들어도 잘외우지 못한다만, 여기가 그곳인가 싶은곳 여러번 지났다
나는 시방도 신기한 것이 일본 북알프스, 남알프스, 중앙알프스, 후지산과,
18박으로 딱 한번 돌아본 몽블랑 자락은 머리에 지도처럼 선명한데, 천번도 넘게 잠잔 지리산은 왜그리 머리속에 하얀색으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천령폭포란다
그 뜻이 뭐시라 캐삿터라만~
아따~
어띠키나 연출에 열심이신지,
올라 내려다 볼때까지 그런 열성이시다
내 재미가 1이라면 지나님 재미는 5는 넘을터이다
몇년전 겨울 내도록 산악부 학생들 빙벽강습 한다고 설악산을 비롯하여 전국 소문난 곳은 다 찾아 다녔는데,
한신지곡으로 절차 밟아 들어 왔더라면 경비도 덜 들고 훨 교육이 되었겠구나
떨어져도 안죽을마한 곳에서,
'장비도 갖췄으니 직등한번 해 보이소~'
이곳은 우골이란다
적석님이 불러 저쪽 능선을 넘어 왼골로 다부갔다
앞에서 부지런히 우리 발 디딜곳 만들어 주며 진행이시다
폼 나는 곳에서 한컷 하입시더~
문득 슬프다고 할까 그리움이라고 할까
그런 감정이 울컥한 순간이다
예전 우리 학생시절에는 이 길이 일반 루터였다
지금 장터목 산장 사방으로는 텐트가 천동은 쳐져 있었음직하다
그때는 그 텐트군 끝나는 곳으로 자연스레 한신지곡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96년인가 마지막으로 텐트 친 이후 2002년인가보니 지곡길은 울타리로 막혀 있더만
내림폭포 내려다 보다
지나님 매번 찍는 그 사진들은 어디에 보관될까
누구처럼 내컴퓨터에^^~?
이후 산으로님은 어디로 진행하시는지 한참이나 보이지 않으시고~
발바닦으로 장비 제대로 갖추신 적석님 따라 올라간 그 200여 미터는 이번 구간의 백미였다
이런길 첫 산행이라는 지나님조차 8만원인가 주고 기본 크렘폰은 준비해 오셨더라
나는 이교수방에 빌리러 갔는데 그건 그나마 20만원은 넘겠지만, 줄라면 주고 말라면 말지 이리 만졌다 저리 만졌다
아이고 더러버라
행님 내 고마 체인 두르고 갈라요
가다가 미끄러지모 다리 부려지모 되지 뭐 카면서 겨우 피켈 한자루나 빌려 온 참이었다
장군대란다
젊을적 몇번이고 오르내렸겠지만 하나도 기억에 없더라
사람들이 저 구녕속에 쳐박혀 사진 찍는게 컨솁이란다
참 일없는 사람들~^^
장군대 그 너륵터는 날 따뜻해지면 한번 이상 꼭 간다
여름에는 너무 시원하여 그 구녕속에서 5분을 견디지 못한다 한다
장군대에서 주능 등로까지는 그냥 약간 왼쪽 사면을 바라며 한 20여분 쳐 오르니 10-09 이정표 나오더라
망바위 소나무 정겹다
그리하여 창암능선으로 내리치다
인민군사령부터는 여기다 저기다 할게 아니라 그 일대 전체가 그렇지 싶더라
예전 화전민의 전답을 그때 잠시 빼았아 일대를 사령부터로 삼았던 모양이다
그때 지리산으로 스며든 인민군 정규군 잔병이 대략 1만여명으로 1개 사단 규모이니, 주둔지 막사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 했으리라
백무동마을 기슭이다
그 사령부터에서 내려오는 500여 미터의 길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을까
날이 어둡기 전에 또다시 진주로 도착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