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남부지역의 중심도시이다.
예로부터 민족문화정신의 진원지라 할 만큼 천 년 고도의 역사를 간직한 충절과 교육·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다.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성종 2년(983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조선 고종 33년(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진주는 경상남도에 속해지고 도청소재지가 되어 관찰사가 진주에 상주하였으며, 경남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25년 4월 1일 경상남도의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 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는 진주시로 승격되어 시장(市長)을 두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주시와 진양군을 각각 폐지하고 통합진주시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구 335,502명 (2011.12.말) 면적 712.84㎢
진주시계 167.7km
0 구간 및 거리 :
대곡면설매리 장석재(1013번R)~0.7~△216.7~1.9~자릿대재~1.6~△257.9~2.9~대곡리 남강변~남강(6km)~지수면 장박교~2.3~방어산(△530.4)~4.5~괘방산(△457)~1.3~어석재(1004번R) / 21.2km
0 동행 : 조은산님
- GPS 트랙(조은산님 작성 자료)
Cartographic Length = 24.2km Total Time: 08:50
07:26 장석재
07:40 △216.7m
08:12 임도 안부
08:25 자릿대재
09:20 △257.9m
10:27 남강변 도로
10:53 1040번도로
11:09 상일제 (남강제방길)
11:43 1040번도로 (상이배수문)
11:57 장박교
12:07 남해고속도로 (청담3교)
13:09 관음사 갈림길
13:42 ×486
13:54 방어산
14:27 마애사 갈림길
14:50 ×470
15:15 ×503
15:47 괘방산
16:10 어석재
-------------------------------------------------------- 이상, 조은산님 자료 그대로 배낌..............
진주市界가 도면으로 대충 끄어보니 167.7km 란다
개인적으로 하도 길치라 진주에 산지 10년이 되어 가도록 우리집에서 동사무소까지의 길도 한번에 간다고 자신 못한다
진주 주변을 자전거 타고 다 돌아 댕겨 봤는데도 행정자치구 구분도 잘 안된다
길치가 너무 심하면 이러다 노망 드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솔직히 난다
하여 몇년전부터 벼루고 벼루었다
매주마다 싸돌아 댕기면 뭐하나
전국은 언감생심 진주라도~
커다란 도면부터 하나 사 놓았다
내 생각으로는 시계산행 전후로 지도를 통째로 외워 다만 진주 지리만이라도 통하고 있자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찌 지도 한장 달랑 들고 진주시 경계를 돈단 말인고
내만큼 길치인 우리 마누라가 진주 구석구석을 내 찾아 다닌다고 시컵 할 거 아니겠나
GPS 달인 조은산님께 SOS를 쳤다
엇?
한방에 오케이다
나 모르는 아직 못 받은 빚이 있나?
<50,000 :1 진주시 전도>
뭐 사실 따지고 보면 조은산님도 내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GPS 그거 배워 두었다 이런데 쓰지 어데다 쓰나
더군다나 선답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존 트랙 자료도 없더란다
지도를 보고 낱낱히 손수 그어서 만들었단다
그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겠나 짐작은 간다
오뎅 한박스 들고 집 근처까지 일부러 오신 조은산님과 중앙시장 제일식당서 국밥 한그릇 말아 먹다
그리곤 인근 방앗간에서 김밥 세줄 샀다
그 집 김밤 짱나게 맛나데
다음에도 그 집에서 사야지
요즘은 영혼이 맑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그래서 막걸리 한병 일부러 사 넣지 않았다
나중에 산에서 조은산님 말씀하시기로, 막걸리 한병 안 사냐고 물어보려 했단다
물어 보았다면 마치 생각나게 해 주어 고맙다는 듯이 잽싸게 서너병 사 넣었을 터이다
장석재란다
우리 농장이 대곡에 있어 살아 온지 역시 10년이나 처음 가 보는 고개인 듯 하다
대곡면 광석리와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의 경계 장석재,
아늘 토박이 한테 물어 보아도 고개 이름도 모를 뿐더러, 장석재라 부르지 않냐하니 그것도 모르겠단다
그럼 장석재는 뜻도 없이 지도 만드는 사람이나 행정관청에서 억지로 찾아 사용한 모양이다
인근에 이렇듯 깔끔한 등산로도 하나 있었구나
어떤 겨울날 한번 걸어 보리라
소나무 낙엽 두텁게 쌓인 길 희미한 산길을 걷다 문득 고개 돌려보니 지리산이 저만치 선명하다
더 걸어 보아야 확실히 알 일이다만, 진주시계가 제법 잡목 우거지고 가시밭길 앞길 막는 곳인 줄 알았더만 의외로 갈끔하다
좌측으로도 우뚝솟은 산 하나 있다
자굴산 아니냐니 조은산님 산경도를 꺼내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방갓산이라 한다
책상머리에 앉아 지도와 사진을 꼼꼼히 보고 있으려니 벽화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만....
216.7m 봉에서 조망되는 진주시가지
진주시계 첫구간 걸어본 느낌으로는 의외다
조은산님도 이렇게 좋을 줄 알았더라면 진즉 걸어볼걸 하신다
산불조심 표지기 달고 나아 가신다
진주시계 걷고 싶은 후답자는 저 표지기 따라가면 될 터이다
GPS 없이는 많이 헤멜 길이더라만 뒤따라 다녀보면 1m도 헛발길 없으시다
보니 조은산님 물만난 고기시더라
50여분만에 임도 하나 만난다
이곳에서는 사진의 저쪽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사진 찍은 곳으로 진행해야 된다
우리는 임도따라 왔다
시계 마루금은 산으로 와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이 대충 보아도 잡목이 만만찮다
자릿대재
예전에 인근 왈패들이 모여 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재물을 약탈했다 한다
그러니까 조직폭력배라기 보다 그 시절에 흔히 있었던 그 머시라노
그런 아가들이 모여 있다가 지나는 소장수들에게 후카시 넣어 더러 돈도 빼앗고 그러다가 소도 빼앗고 그랬는 모양이다
2004년도에 이 도로가 포장?
자릿대재
자릿대재에서 대곡면 안개나루까지 가는 산길은 비로소 예측했던 시계답다
GPS가 없다면 심히 헤메일 구간이라
하여도 이런길은 잠시다
예전에 배가 많이 왕래한 곳인 모양이라
'안개나루' '뱃가' 이런 지명이 아직 남아 있으니 말이다
생각을 더 넓히자면 왜놈의 세끼들이 이 뱃길을 따라 올라와 약탈한 곳이기도 한 모양이라
원래대로 하자면 위 사진의 오른쪽 강변(지수면)를 따라야 정확한 진주시계가 되겠지만 헤엄칠 일이 있나
의령군 화정면 상일리 마을 쪽으로 돌았다
조금 진행하다 보니 저 위쪽으로 다리가 보이기는 하나 마침 물길을 건널만한 곳이 있어 도강하다
우리가 진행한 빨간선
강물이 불어있는 시기라면 저 위쪽 금동교로 돌아도 큰 불편은 없으리하다
나는 살면서 살아 있는 생각이 하나 있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하자'
약 십여년 전부터, 그러니깐 남강변에 살기 시작하고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남강을 따라 부산까지 뗏목을 타고 한번 가 보자-
내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그 실행을 하고 만다
장박마을까지 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혹은 찻길을 따라 걷는다
잘 아니 보이지만 저 강기슭에 멋드러진 정자 하나도 있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예상도 못하게 발바닦이 억수로 아팠다
그리 뛰어서 걸어서 돌아다닌 세월인데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인겐가
일없이 왜 발바닦이 아플까
저 앞도 예전에는 용봉나루라 불리운 모양이다
의령 장박마을 장박교를 건너면 다시 지수면이다
다리 건너 오른쪽에 예전에 소금창고가 있었던 모양 그 지명이 염창나루터이다
예전 부산 살 적에 들은 이야기로 부산 구포 나루터에서 배 한가득 소금을 싣고 낙동강을 따라 안동까지 간단다
되돌아 올 적에는 그 소금 가마니가 모두 쌀 가마니로 바뀌어 있다 하였단다
얼마나 서정적인 모습인가
또한 그 시절엔, 아니 인간 세상엔 소금이 그리 필수품인 모양인 게라
장박교를 지나 조금 진행하면 남해고속도로를 만난다
시방은 공사중인 어떤 공장이 있어 그 공장으로 통과 했는데 나중에 공사가 끝나 그 길이 통제 되더라도 이 굴다리로 통하는 길은 뚜렷하다
이 마을 이름이 불확실하다
장차 진주시계를 뜻하는 이가 있어 짧게 끊고자 한다면 이 마을에서 끊어 다음을 이어가면 딱이다
마침 한가롭고 따뜻한 곳이 있어 공양이나 하고 지나가자 하다
시계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만 현실성이 없고,
밥 먹은 곳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양호한 산길이 있다
그길 좀 빡세다
아니, 진주시계 산길이 대체적으로 고바위가 심하더라
왠간한 정맥길 보다 오르내림이 심한 반면, 개인적인 생각으로 느낌은 더 좋다^^
남해고속도로
조은산님캉 백두대간 같이 한 이후로, 정맥,기맥,지맥도 몇번 같이 하긴 했네
저번 억불지맥 이후로 잠시 뜸하다가 그래봤자 그게 몇개월 전인고
그 잠시 사이 이 영감이 변했어
남의 무덤에 비석을 보면 환장을 하는기라
특히 벽진이씨 무덤이 있었난데 마치 큰아부지 묘소 보드키 얼마나 들떠 하는지
몇개의 무덤을 지나쳐 오른 마당바위, 나야 모르고 조은산님이 마당바위래
막걸리 한잔 꺽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더만
저 오른쪽 산은 국사봉, 장군봉이다
그런데 나중에 진행하다 보니 마당바위는 따로 있더라
걍 이곳은 막걸리 바위라 칭하기로 함
남강 뒤로 보이는 산은 지리산이다
정말로 진주市界 기대 이상이다
여기가 진짜 마당바위다
낙남정맥 산그리뫼가 제대로 조망된다
삼천포 와룡산, 하동 금오산, 남해 망운산이 멋진 곳이다
또한 내 사는 진주가 어느곳을 이웃하여 있나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묵신우 장군의 전설이 있는 방어산,
찾아 보기는 귀찮고 묵씨는 우리 민족하고 뗄레야 뗄수 없는 성씨가 아닌가
정상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변성에 반란이 일어나자 3천명의 군사를 모아 이곳에 성을 쌓고 적을 방어 했다 한다
조은산님도 언급 하셨지만 그 적의 정체가 궁금하다
환단고기에 심취한 자라면 시방의 방어산은 만주에 있었고 변성(邊城)은 시베리아나 북경을 일컫는 것이다 하면 능히 이해는 될 것이다
환단고기 대로라면 대동여지도도 다 가짜다
물론 조선왕족실록도 일제에 의해 아주 교묘히 조작된 것이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건 차치하고라도, 환단고기의 기록들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할 사실이다
<대동여지도에서의 방어산>
방어산 지나 능선을 이어가니 괘방산이 보인다
아주 엣날에 저 산에서 북을 치며 중요한 사항을 지방민들에게 알린 일이 있었나
왜 괘방산인고
함안 마애사
산상 음악회가 열리는 사찰이란다
방어산,
확대하면 마애불이 보인다
무덤이 아주 희한해요
딱 물길이 머무를 곳에 조성되어 있데
조은산님 보시더만, '무슨 무녕왕릉이가~' 하신다
진짜 괘방산
진지하게 삼각표지점 연구하시다
16시 10분경 어석재에 당도하다
이 고개는 따로 어식재, 어시재로도 불리우는 모양이다
조은산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어석재가 맞단다
어석재에서 택배 기다리고 있으니 서쪽 하늘이 붉다
다음엔 낙남정맥 발산재 지나 만수산 지나 한골재까지 진행 할 계획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