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國旅行, 山行

2011 남알프스 2

객꾼 2012. 2. 20. 16:38

 

04:00

'각 텐트는 불을 켜고 장비를 챙기시오' 목소리 높여 사람들을 깨우다

식탁 대용으로 사용하는 통나무 의자를 마주하고 앉아 우선 압력밥솥에 불부터 지핀다

철화님 해바라기 렌턴이 제법 밝고 운치가 있어 책을 가지고 나와 읽다보니 40분이 훌쩍 지난다

 

그런데 그 시각까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산거북이 성님 텐트는 불조차 켜지지 않는다

기상하여 40분 넘도록 텐트안에서 무슨일로 꼼지락거리고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하다

 

한번 더 고함을 친 후에야 우선 경란이 부터 나온다

연후에 하나둘 나오고 마침내 산거북도 기어 나온다

헌데 산거북이 풀을 못 뜯어 먹어서 그런가 여엉 기운이 없어 보인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다시 텐트로 스며들었다 변소를 들락거렸다 반복한다

 

그때까지도 못간다 할 줄은 생각도 안했다

변소 지나치면서 보니 눈까리는 안 돌아 갔더라

마침내 못 가겠다 하고, 덩달아 산유화 누야도 산거북이를 지키겠다며 못 가겠다 한다

그그참~

 

여차 저차 후,

저쪽으로 돌아가는 차편을 알려주고 할수없이 둘을 남기고 다섯은 산길로 올랐다

나는 시방 생각에도, 그 전날 저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반 농담조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산거북이성이 그 꾀병(?)을 부렸을까 궁금하다

옛말에 이르기로 돈에 눈이 달렸다는 것과 같이, 그 몸이 알고 꾀를 부리는 이치인 것이다 

 

 

 

 

당초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계곡 루트는 태풍으로 인하여 등산로가 많이 파괴되어 당분간 산행중지 중임을 곳곳에 알려 놓았다

그쪽 루트가 한시간 빠른데, 지리산 골짜기 헤메는양 치고 한번 올라볼 마음도 일긴 하다

결정적으로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리도 있고, 또한 우측 계곡은 8부 능선쯤에서 조망이 멋일을 거 같은 느낌도 있어 착한 코스로 갔다

 

급등 오르막을 6시간 쯤 치고 오를 모양이다

경란이 구상나무 처음 보나

배낭 무게는 모르겠고 예상외로 졸졸졸 잘 따라 댕기데

 

 

 

 

철화성님은 이때 별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내는 좀 미안했다

턱 버티고 서 있는 폼이 저 미국인 일어날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으로 해석되더라

아니나 다를까

급히 배낭을 주섬거리더만 양보(?)하고 먼저 출발해 주데

 

 

 

 

 

어제 지나온 봉황삼산 자락

 

 

 

 

알기쉽게 설명하자면,

북알프스는 설악산이요 남알프스는 지리산이다

북알프스는 크고 예리하며 메마른 방면, 남알프스는 웅장하고 깊으며 촉촉하다(일본 산꾼의 설명이다)

 

가끔씩 이렇게 물길도 만난다

물 맛은 참 좋다

 

 

 

 

시라네고이께 고야,

백봉삼산의 능선 어드메에 연못을 끼고 있는 산장쯤으로 해석되겠다

남알프스시에서 운영하며, 동계기간에는 무료로 개방된다 한다

 

쉬고 있으려니 산유화 누야가 뜻박에도 올라 오셨다

내 그 심정 알지

산이 그곳에 있는데 산밑에서 돌아가려니 말로 표현 못 할 그런게 있지

 

 

 

 

 

 

키타다께 산릉

 

 

 

30분쯤 푹 쉬었다

앞에 앉은 노인부부는 정년퇴임 하시고 산을 다니신지 5년쯤 되었다 한다

오른쪽에 앉은 분은 일본 산악계에선 나름 유명하시다 한다

스틱에 '북악 200회 등정목표' 이런게 붙어 있고(현재 187회째), 일본 산악잡지에도 나오고 그랬단다

 

대화,

"저기 머리 긴 사람(철화)은 몇살인고?"

"여차저차입니다"

"자네는 몇살인고?"

"마흔일곱입니다"

먼 허공을 보시더니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말인지 중얼거린다

"나를 보고 몇살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마흔다섯이나 오십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겠다~"

 

그 말씀을 들으며 더 열심히 놀아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삼십대는 좀 어설프고, 오십대는 좀 맛이 간 듯하고, 사십대가 놀기에 딱 좋은 시절이더란다

 

 

 

 

산유화 누야는 그곳에서 하산하고 우리는 내쳐 오른다

이 루트가 쿠사스베리란다

사면에 풀(야생화)이 많이 나 있다는 소리인지, 풀 때문에 길이 미끄럽다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엄청 급등이다

 

연못 너머로 봉황삼산

 

 

 

 

 

7월이면 이 사면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난단다

가을을 붙잡고 있는 고산식물이다

 

 

 

헐~

산거북이 풀 뜯어 먹으러 오셨나

쉬고 있으려니 갑자기 나타나신다

 

자고로 산행중엔 객꾼의 쉰소리, 산거북 풀 뜯어묵는 소리, 철화의 난데없는 쇠북종 소리, 경란의 넘어가는 웃음 소리 등등이 조화로워야 재미가 한층 더 하는 법이다

그래 내가 출발전에....

짐 분산해 줄테니 올라가자 안 합디까~ 

 

 

 

 

 

 

 

7부 능선쯤에서 시야가 트인다

 

 

 

언젠가 책자에서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일본사슴이 알프스의 고산식물을 다 뜯어 먹어 버려 특정 종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단다

저렇게 울타리를 쳐 격리시켜 놓으니 종의 분포가 확연하게 확장 되더란다

 

산악 노인보고 무슨 꽃을 보호하려 그랬습니까 하니

시나노킹바이라 하는 꽃이란다

그 꽃 북알프스에 천지삐까리 였듯이 남알프스에도 천지로 널려 있을 거 같던데 새삼 무슨 저런짓을~

만년전에도 천년전에도 일본사슴은 알프스에서 그 꽃을 뜯어 먹으며 살았을 터인데, 항차 그 이유라면 왜 이제껏 멸종되지 않았을까?

 

머리에 띠 두르고 '환경' 완장 차면 생각의 패턴이 무서붜져요

 

 

 

 

 

 

고타로우라는 사람이 명명한 능선인지 모르겠으나 드뎌 그 능선으로 올랐다

동서남북이 탁 트여 보기에 과시 좋았다

 

 

 

 

 

 

 

 북악 자락에 앉아 사방을 조망하다

 

 

 

 

 

 

어느산이고 산정을 그냥주지 않아요

산행 시작한지 6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구나

 

 

 

끼따다케우따 고야,

북악 주능선에 위치한 산장이라는 의미인지..

 

거북성은 미리 올라 산정에 갔다 오셨다

우리는 시간이 느긋하므로 예서 라면이나 끊여 먹고 오르자 한다

 

거북성이 인사를 나누고 내려가더만 다시 되돌아 산장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나 지나도 안 나와요

나중에 캔맥주 4개를 건네고 가기로 그거 산다고 그리 오래 머물렀나 싶었는데..

'세상 모든 거 포기하고 같이 살자면 살만한 처자가 저 안에 있더라' 하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전하더라

뜨나 안뜨나 같은 눈으로 을매나 뚫어지게 그 처자를 바라보고 있었을꼬~

 

 

 

 

 

 

점심 후 다시 오르다

산장을 배경으로 센죠가다케와 고타로우산(2725m),  뒤로 아사요봉과 구름모자 쓴 가이코마가다케 

 

 

 

 

 

 

 

저곳인가 하고 오르니 또 다른 봉우리가 하나 더 뒤쪽으로 버티고 있다

정상까지는 산장에서 30여분 소요

 

 

 

 

 

일본에서 두번째로 높다는 북악,

같은 봉우리에 3192m로 표시되어 있는 곳도 있고, 3193m로 표시되어 있는 곳도 있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녀와서 우기기 딱 좋겠더라

3193m는 국립공원 기준이고, 3192m는 우리말로 하면 국립지리원 기준(삼각점이 1m 낮은 곳에 박혀 있다) 이라 보면 무난하겠다

 

 

 

 

홍도가 왜 北岳(끼타다께) 이냐고 묻기로 낸들 아나

할배 곁에 앉아 물으니, 묻지도 않은 말을 많이도 해 주신다

 

백봉삼산은 北岳(끼타다께, 3193m), 間노岳(아이노다케,3189m), 農鳥岳(노토리다케,3026m) 인 것인데,

북악은 말 그대로 3산 중에서 제일 북쪽에 있어서 그리 부르는 것이고, 아이노다케도 말 그대로 중간에 있어서 그리 부른다는 것이다

다만,

노토리다케는 좀 유래가 다른데, 겨울에 쌓여있던 눈이 봄날 녹아가다가 딱 어느 시점에 잔설이 새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한다

그때가 농사를 시작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할배는 그때 고구마 농사를 시작 한다는데, 여하튼 산 아래 사람들이 노토리다케의 잔설이 새의 형상일 때를 보고 농사시기를 가늠 한다는 이야기다

멀리 북알프스에도 白馬岳(시로우마다케)이 있는데, 잔설이 말의 형상일 때가 농사를 시작하는 시점이라 그리 이름되어 불려지고 있다 한다  

 

참고로,

할배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올랐던 쪽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보고 西노山(니시노야마)라 부른단다

그들이 보기에는 산이 서쪽에 있어 그러는 것이란다

 

 

 

 

 

나아갈 산길,

아래로 야마나시현 북악산장이 보인다

오늘 우리가 머물 곳이다

 

아이노다케와 노토리다케가 웅장하구나

 

 

 

출발전 할배가 은근히 부르시더만 주의를 주신다

한해에도 몇명씩 하산중에 구른단다

보면 알겠지만, 일단 구르고 난 연후에는 살길이 막막하다

 

남알프스에서 사람들이 1년에도 몇명씩 죽기로 어디서 죽을까 싶었더니 이쯤인 모양이다

일행 단단히 주의 시키고 나아가다

 

 

 

 

 

 

일단 스텝이 뒤엉켜 한번 굴렀다 하면 멈추기 힘든 곳이다

나는 스틱 두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위태롭더니, 그들은 나를 보고 하나로 용케 잘 가는구나 한다

 

 

 

 

 

 

금번 남알은 기대만큼의 단풍은 없었다

유일한 아쉬움이다

 

 

 

 

 

 

갈 길로 구름 오르다

 

 

 

 

 

 

지나온 길로 구름 오르다

 

 

 

텐트장 1인당 600엔(사람 기준),

물은 300엔 티켓 끊어와 멋도 모르는 경란이 한테 10리터 짜리 수낭을 줘 떠 오게하니 촐랑촐랑 잘도 떠 온다

예전에는 물 떠 오는게 눈 큰 홍도 담당이었는데 그런 단순(?) 노동은 경란이 더 잘하데

 

내일 아침 일출이 기대된 순간이었다

이날 오후 4시쯤 기온이 영화 5도 였고, 밤에는 약 십이삼도로 내려갔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녁식사 후,

나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산장으로 올라 난로곁에 앉아 시간을 소일했다

몇몇은 큰병을 두병쯤 비웠지 아마~

 

철화성님의 말리는 소리를 몇번이고 듣다가 술꾼들은 자리로 들더라

바람소리 약하지 않았으나 달게 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