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다솔사

객꾼 2012. 4. 5. 15:29

황토공장에 흙 사러 가는 길, 잠시 우회하여 다솔사에 들렀다

오르는 길,

예의 소나무들이 어느 정도씩 고개를 숙이고 있기로,

'송광사 경봉 큰스님이 깨달음을 얻어심에 그 예를 갖추고자 스님 계신쪽으로 고개 숙여 절을 하고서 지금껏 들지 못하고 있다' 하니 그저 웃더라

 

호제비꽃,

다솔사 법당 오름길에 외로이 피어있다 

 

 

 

안심료(安心寮)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일제 강점기 12년간 이곳을 내왕 하시면서 머물던 곳이라 한다

불교 지하운동 결사대인 만당을 결성하여  부산과 중국의 상해 임시정부를 연결하는 거점지로 활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셨고,

특히, 독립선언서 초안과 공약 3장을 이 처소에서 직접 작성하였다 한다

 

그 이후,

소설가 김동리가 거주하면서 1961년 등신불과 황토기 등을 저술한 곳으로 초기 동리문학의 거점이자 한국 근대문학의 산실이라 한다 

 

학교 다닐 적,

수련회때 몇번 잤던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었나~

알았는데 그 간 잊고 지냈나~ 

 

 

 

 

 

 

공양간만은 그때 그대로다

저 솥에 밥해 먹곤 하였었지

   

 

 

 

 

 

마침 점심이라 기웃거려 보니 먹고 싶은 이 알아서 퍼 담아 먹는 식이다

혜등스님 계신곳 물으니 아무도 아는 이 없다 

 

 

 

 

적멸보궁 뒷편 녹차밭

한때 불려가 전정작업을 하곤 했었는데 나무가 하나도 안 자랐다

따뜻한 동네인데 이상한 일이다

뽑고 다시 심었나 자세히 살펴 보아도 그런 흔적은 없더라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영악사라 불렀으며, 선덕여왕 5년(636년)에 부속건물 2동을 건립하고 다솔사라 개칭하였다

그 후, 자장율사, 의상대사 등의 고승들이 머물면서 건물을 더 짓고 영봉사로 불렀으며,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부속건물 4동을 더 짓고 다시 다솔사로 불렀다 한다

그 후에도 전란등으로 인하여 다솔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를 하였다 한다

 

 

 

 

 

그 유명한 다솔사 푸세식 해우소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10년 된 스님은 한덩이 내리고 엉덩이 잽싸게 옆으로 치우는 식으로 피하고, 20년 된 스님은 먼저 한덩이 내려 보내고 튀어 오르는 방울들을 남은 덩어리들로 맞춰서 피하고, 30년 된 스님은 위에 그네를 걸치고 왔다 갔다 하면서 피한다는 우스개 소리 있는 해우소다

 

 

 

 

 

 

우리나라에 부처님 오신 지 1,600여년 임에 다솔사 역사는 곧 우리나라 불교 역사구나

나오는 길 고목이 그리 이야기 하는 듯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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