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의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길이 1,400㎞(남한지역 670㎞)의 산줄기이다. 이미 존재해 오던 우리나라의 전통적 지리개념이 1800년 무렵에 등장한 '산경표' (山徑表 - 저자를 여암 신경준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시기와 저자에 대한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를 통하여 체계화되었다.
산경표에서는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근간이자 기둥이 되는 가장 커다란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반면, 산맥도는 일제침략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20세기 초, 일본 지질학자 고또분지로는 지하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14개월에 걸쳐 한반도의 지질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그 조사결과인 '한반도의 지질구조도'에서 산맥개념을 처음 제기하였다.
따라서 지질선에 입각한 산맥개념은 실제 지형과는 다른 것이다. 이때부터 산맥도가 원래 산줄기의 개념인 산경도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백두대간이 사라진 자리를 태백산맥이 차지하게 되었다. 해방 후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내내 잊혀졌던 백두대간이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백두대간의 가치***
(1) 민족의 상징으로서의 백두대간
'백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따온 말이며, '대간'은 '정간', '정맥', '지맥'들에 비해 으뜸임을 나타내 주는 산줄기의 품계라고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남으로 지리산까지 뻗어 이어지면서 1정간 13정맥을 비롯한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를 빚는 동시에, 북으로는 드넓은 대륙으로 힘차게 뻗어가고 있어 우리민족의 기상을 담고 있다. 이것이 일제의 '백두' 개념의 말살정책에 의해 태백산맥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상징인 백두대간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민족의 긍지를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문화적 특성을 구획하는 울타리로서의 백두대간
물줄기는 사람을 모으고 산줄기는 사람을 나눈다. 물줄기가 만들어 놓은 비옥한 평야는 사람들에게 거주지와 경작지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키워준다. 그러나 산줄기는 높고 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을 힘들게 하며 문화적 이질성을 커지게 하는 경계역할을 한다. 실제로 속리산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로 문제가 되었던 화북면 운흥리 중벌리의 경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상주시에 속하지만 실질적 생활권은 충북 괴산군에 속한다. 이 지역이 충북과 마찬가지로 백두대간의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백두대간은 크게 영남권과 호남권, 영남권과 기호권, 영동권과 영서권으로 나뉜다. 각각의 지역은 백두대간에 의해 오랫동안 언어, 풍습, 성격 등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3)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의 백두대간
산이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반면 생물들의 이동은 보다 원활하게 한다. 특히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하는 야생동물의 경우 생활권을 확보하는데 있어 산줄기는 매우 적합한 서식처로 된다. 또한 산 능선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야생 동 식물의 이동 및 개체군 확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백두대간은 국토 최대(1,400㎞)의 생태통로(ECO-CORRIDOR)라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은 생물종 다양성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동물 564종 중 대부분이 서식하고 있으며 고도 및 기온차 등 지리학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에 뿌리를 둔 모든 산줄기가 전국에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국그린네트워크화 구상(환경부, 1994)에 있어서도 바로 백두대간이 생태 중심축으로 설정된다.
백두대간이란?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 검증과 고증을 거쳐오면서 발전시켜온 전통지리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두대간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인 이 땅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내고 표현해 낼 수 있다. 산줄기가 강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산맥의 혼돈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백두대간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일제의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산맥개념은 하루속히 우리의 전통지리관인 백두대간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만 가지고도 우리의 산줄기와 강줄기의 근본을 알 수 있고, 우리 민족사의 굴곡들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백두대간, 살아 꿈틀거리는 불가항력의 힘이 느껴지는 거대한 산줄기는 바로 이 땅의 역사 다.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체계를 정착 시켜 나간다면 머지않아 백두대간이라는 가슴 벅찬 이름이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다.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은 건너지 않는다 . 한반도의 등뼈를 이 루는 백두대간은 동과 서를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임과 동시에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역할을 한다. 태초에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들은 저마다 대간의 저력을 닮은 모습으로 한반도 구석구석으로 가지를 쳤다. 그렇게 해서 대간(大幹),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을 일구어 냈다. 기둥 줄기인 대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10대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인 정맥들이 국토의 뼈대가 되고 있다. 백두대간은 1625여km에 이른다. 우리가 아직 가볼 수 없는 북녘 땅에는 2000m급의 고봉들이 줄이어 있다. 남쪽에는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약 670km에 이르는 거리에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 등을 품 고 있다. 한반도를 일군 백두대간은 대륙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하여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기운으로, 이 땅의 근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 한다.
백두대간의 개념이 언제부터 우리민족의 지리관으로 자리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날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료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조선 초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었을 것이란 사실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단지 사료가 없어 고증이 안될 뿐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산경표>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산경표>는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는 심혈을 기울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동여 지도는 정밀함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제작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도로 인정받고 있 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우리 지리관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산경표>는 전국의 산줄기를 1대간(大幹), 1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규정 했고 여기서 다시 가지친 기맥(岐脈)을 기록했다. 산줄기의 순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중심 산줄기로 하고 여기서 가지친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우선하고, 백두대간의 북쪽으로부터 가지친 차례대로 그 순서를 정했다.
백두대간과 정백정간은 산이름을, 해서나 호남은 지역 이름을, 나머지 11개는 강이름에서 따 와 산줄기의 이름을 정했다. 때문에 이름만으로도 강의 위치와 지역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강이름을 따다 이름을 지은 것은 정맥의 정의를 강유역의 경계능선, 즉 분수령으로 해석했 기 때문이다. 또한 강의 위치, 유역의 넓이, 모양을 알아보기 쉽게 하여 강과 그 유역을 파 악하여 지형지세를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산이 곧 그 강을 이 루는 물의 산지라는 인식를 비롯하여 산경표는 활용도를 중요시 하여 제작된 지도였다. 1913년 최남선은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출판한 적이 있었다. 하 지만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그 가치는 묻혀버렸고 영영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는 우연히 인사동 고서점에서 "산경표"를 발견했다. 당시 대동여지도 복간을 준비하던 중 몇가지 의문에 고심했던 이씨에게 "산경표"는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우형씨는 백두대간을 알리기 위해 많는 노력을 하였다. 그 결실을 거두어 백두대간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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