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09. 6. 12~ 6. 14(2박 3일)
* 6. 11(금요일) 22:00경 육십령휴게소 도착 1박
- 1일차 : 07: 30 육십령 출발~19:35 황점 도착. 육십령휴게소 1박
- 2일차 : 08: 50 무령고개 출발~17: 25 육십령 도착
○ 누구랑 : 희인, 혜인, 희라, 혜지, 객꾼, 뚜버기
또 하는 말이지만 요즘 아가들 참 가여워
무슨 학원을 그리도 다니나
아가들 학원때매 자칫 대간길 위태롭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짜든지 감언이설로 저거매들을 꼬드겨 아가들을 잠시나마 공부에서 해방시키는 거야
육십령 휴게소 할매랑은 인연도 길다
그 할매는 여섯번인가 보았는데 그때 마다 화투치고 계신다
길 건너편에 멋지게 양옥하나 짓고, 그 아래채에 조립식으로 또 하나 놓았다
금,토요일을 빌려 베이스캠프 삼아 육십령 좌우구간을 걷기로 했다
서울에서 육십령을 그리도 빨리오나
뚜버기네는 차츰씩 가까워지고 우리네는 조금씩 멀어진다
미국에서는 밤 10시 이후에 아가들을 안재우고 싸돌아 댕기면 아동학대로 잡아간다는데....
밤 늦도록 산행계획(?)을 세우다 잠들었다
04:40 어김없이 자명종이 울린다
아가들은 그대로 재워두고 황점에 뚜버기차를 세워두고 다시 돌아온다
육십령에서 황점 가는 고갯마루가 남덕유산에서 진양기맥으로 이어가는 길인줄 이튿날에야 알겠다
햇살받아 빛나는 월봉산, 한번 오를만한 산이제
아가들을 깨워 씻기고 입히고 먹이느라 부산하다
어차피 하산하여 다시 돌아올 방이므로 물건을 그대로 두고가니 편하기 그지없다
서둘러 출발하니 7시 30분이다
들머리에서 뚜버기와 마주보며 아가들 못 듣게 속삭인다
"이거....비지정 구간이자너~~"
별 우습지도 않은 말로 둘이서 마주보고 지긋이 웃는다
참 신기해요
몇시간 자지도 않았는데 투정도 안하고 촐랑거리고 따라 다니는 거 보면~
이날 겪어보니 이 아가들 체력이 엄청나데
암벽이 언제 나오냐고 노래를 부르더만 신났다
이런 길이 한시간쯤 계속 되었으면 좋겠단다
자...
다음 암벽을 향하여 빨리가자
아가들도 대단하지만 그 분위기 끝까지 유지하며 아가들 꼬와서 데려가는 뚜버기와 나도 대단해요~
드디어 할미봉~
이 봉우리를 두고 합미봉이라고 하는 사연도 있는데 알아보니 제법 재미있다
이 봉우리는 알다시피 장수군과 함양군의 경계에 있다
그러니깐 함양군쪽에서도 지번이 있고 장수군쪽에서도 부여된 지번이 있다
그런데 장수군에서는 이미 1961년 4월에 합미봉으로 지명고시 하였고(국토지리원을 통하였는지는 모르겠다)
함양군에서는 최근 할미봉으로 국토지리원에 지명고시한 바라 한다
뜻있는 몇몇이 당초 합미봉으로 지명고시된 곳을 할미봉으로 하자면 지명변경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누락되었다 하며, 당연 국토지리원에서는 전라북도지명위원회에 규정에 따라 의견조회하여 할미봉으로 지정하였다 한다
그렇다면...
할미봉이 맞나 합미봉이 맞나
나는 그냥 부르기 정겨워 할미봉이라 하리
지나온 산길이 제법 멀다
사진의 오른쪽산도 깃대봉이라기도 하고 구시봉이라기도 한다
나중에 그 연유도 알아보아야 겠다
남령 좌우로 남덕유산과 월봉산 황석산의 산그리메가 또렷하고 뒤로 금원산이 희미하다
금원산도 당초는 산이 검게 보여서 인근 백성들이 검은산이라 하였난데,
이것이 문자로 차서되는 과정에서 금원(金猿)이 되었고,
말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이 한자의 뜻에 따라 황금원숭이 전설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초 우리 배달어대로의 산 이름들이 중국문자로 차서화 되는 과정에서 그 순수한 우리 뜻을 상실한게 한두곳이 아닐터이다
일단 국태민안 한번하자
어디로 할까
저 큰산을 보고하면 안되겠나
서봉과 남덕유가 장엄하다
탁트인 조망을 즐기며 할미봉정에 충분히 머무른다
보니 서봉과 남덕유가 있는데,
서봉을 일러 장수덕유산이라고도 하니 그럼 남덕유산은 함양덕유산인가 싶어 지도를 새삼보니 함양군 서상면 지역이다
참으로 녹음이 짙다
재주만 있으면 시한수 읖고 싶고나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흐흠..이 경우에 아니 어울리는 시로구나
드뎌 희라의 제일 관심사항 밧줄사용 구간이다
아빠의 붉은 자일을 언제 쓰 먹을지 집에서 부터 궁금해 하던 터였는데 정작 질긴 동아줄 잘 쳐저있다
안전자일로 몸을 묶고 한놈씩 내려 보내느라 시간이 꽤 지체된다
사실 그렇게 요란하게 내려올 길도 아니었다만 이벤트 차원에서 그랬다고나 할까
겨울에 이 구간을 지나노라면 밧줄도 눈속에 묻혀있고 꽤나 미끄러운 구간이다
한오십미터 지나가는데 30여분이 훌쩍이다
매냥 이런길이면 다른 투정은 아니할 게다
어쩌면 속리산 내리막 구간이나 희양산 오름길 따위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미봉 지나 한시간쯤~
아직까지는 별다른 투정없이 대체적으로 팔팔하다
육십령에서 서봉까지 일곱시간 걸렸다
어른 걸음이라면 세시간쯤 진하게 치고 오르면 될 터이다만
그날 밤 곰곰히 여겨보니 이 오르막이 백두대간 중에서도 제법 장한 곳에 속하는 편이다
팔부능선쯤에 이르니 드뎌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귀퉁이 돌드니 아예 바위틈에 저마다 숨어 버린다
두엇은 눈물도 찔끔거린다
원인을 분석해 보면 우리의 실책이 크다
정상이 점점 가까워 지기로 그예서 쉬게 할 요량으로 막판 한시간쯤은 쉬게 하지도 먹이지도 않고 올랐기 때문이다
뚜버기와 둘이 산에 취하여 잠시 망각한 대가다
되돌아 보니 올라오기도 많이 왔다
이때쯤 뚜버기는 혜지를 꼬운다고 바빴는 모양이다
저~기,,,까지 가야 된데~
ㅎㅎ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희라와 혜지의 배낭을 벗겨메고~
그래도 큰것들이라고 난구간에서는 진득한 맛이 있다
남덕유산의 위용이 점차로~
우리나라 어느곳에서라도 뒷산에 오르면 물을 한번도 밟지않고 백두산으로 이르는 산길이 있다했다
따지고 보면 대간이고 정맥이고 기맥이고 지맥 아닌 산길이 없을터인데 사실 그런걸 명명하는 자체도 우습다
다만 나라에 어딜가나 사람이 많은데 제각각 이름이 있듯이 그리치면 속편할 게다
진양기맥이 저곳에서 시작되기로 실삼시리~
ㅋ큭..희라 코피 터졌는 갑다
두시가 넘었다
아가들이 투정을 부릴만도 하다
마땅한 곳이 없어 헬기장에 전을 폈다
후딱 밥묵고 가면 될걸 뒤늦게 혜지를 이끌고 나타난 뚜버기 자리를 옮기잔다
앞으로 이렇게 전을 펴기로 결정된 상황에서는 군말없이 그리하기로 나중에 뚜버기와 합의하다
장차 나아갈 덕유 주능이 장엄하다
좌우로 뻗힌 골짜기와 능선들이 조금만 깊고 길었으면 지리산 못지않는 메니아를 거느린 산이 되었을 터인데..
그것보다 지리산이 가진 역사가 없어서 그렇나
소위 산꾼이라는 사람들중에 덕유산만 좋다고 다니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다
펼쳤던 전을 다시 거두어 자리를 옮기니 다들 입이 남산만하다
희인은 한참이나 울며 아니오기로 나중에 다시 돌아가 데려와야 했다
설앵초인지 큰앵초인지 제법 눈에 뜨인다
뒤쪽에는 관중이고 밑에 호박잎처럼 생긴 풀은 뭐여~
뚜버기는 결과적으로 잘했다는데 글쎄다
아가들의 회복속도는 우리가 예상을 못할 지경이다
조금만 지나면 금세 생기발랄해 진다
가다오다 잠재우는 거 이거 한번 검토해 볼 사항이다
한십분이나 재운다면 모를까
남은길도 많은데 이런식으로 버릇들면 나중에는 조금만 힘들어도 자고 가자는거 아닐까
덕분에 나까지도 버릇되겠다
한시간이나 재우고 다시 출발이다
삿갓봉이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삿갓봉, 비로봉, 백운산, 깃대봉, 시루봉...그런 이름들 참 많다
드뎌 오늘 구간의 목표지점 월성치다
17:50쯤이니 산행을 시작한 지도 10시간이 훨씬 지났다
여기서 다시 황점으로 두어시간쯤 탈출해 내려가야 한다
피곤도 할 터인데 조잘조잘 무슨 할말이 그리 많은지 아예 짝을 지어 조잘거리니 뚜버기와 나는 편타
월성치에서 황점으로의 산길은 일명 바람재라 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모양인가 보다
얼마 아니오니 샘터가 있다
이 골짜기는 물이 많은 편이다
제법 계곡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다
여름한날 충분이 계곡탕이 되겠다
12시간 5분만에 황점 날머리다
대단해요
다리 아프다는 소리는 한번도 안해요
그냥 순간적으로 짜증 조금 내다가 그 순간만 지나면 다시 눈이 초롱초롱~
이놈들 산행실력...인정합니다
7월 출정때 금요일밤 여기서 야영을 하고 뚜버기차를 두고......
저 위 콘크리트 다리우에서 하면 되겠네
미리 세워둔 뚜버기차를 타고 다시 육십령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아가들 씻기고 밥해 먹이고 하다보니 금새 10시다
소초 두병으로 되겠는가
다시 두병, 내일 산행 중 마실 계획이었던 얼린 맥초도 낼름~
반병쯤 남아 물속에 담가둔 남은 소초도 홀랑~
알람을 5시에 맞춰두고 잠들었다
<2일째>
5시에 알람이 울렸다는데 나는 듣지도 못했다
뚜버기 허겁지겁 깨우는 소리에 퍼뜩 일어나 보니 거진 일곱시가 가까워 온다
어제 먹다 남은 것들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물건들을 챙겨 차에 싣고 무령고개로 이동이다
743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니 그럴듯한 저수지가 하나 있다
대곡호란다
대곡호 주변으로는 야영하기에 적합한 팔각정과 쉼터가 세곳이나 있다
무령고개에 차를 두고 산행을 시작하니 거진 아홉시가 가까워 온다
무령고개라는 지명에 대하여는 참으로 말도 많다
무령공이 묻힌 무덤이 있어 그렇다 하고, 용이 춤추는 형상이다 하여 무룡고개라 하고 무룡궁이라는 명당이 있어 무룡궁 고개라 하고 운운..
유월의 녹음사이로 햇살 비치다
이때 아가들 별로 의욕도 없었는데 햇살이 받쳐주니 상당히 고무적이다
고개에 차를 두고 호남정맥을 시작하려는 일단의 팀을 정상에서 만났다
서로 번갈아 사진을 찍는다
영취산이란 지명에 대해서도 제법 말이 있다
그것참~
산은 그저 가만히 있는데 사람만 번잡히 감놔라 배놔라 하는 형국이다
휴~
나아갈 깃대봉 방향, 일단 시작해 보는거야
산행 시작한지 두시간, 아마도 977봉쯤이리라
예까지 참으며 막걸리 들고 온것만으로도 용하다
자~
시집 잘 가라고 산신령님께 빌자~
국태민안~
가족건강~
이왕이면 공부도 잘하게 해 주시고요~
두시간이나 걸어 왔으니 편히 쉬며 부담없이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고~
ㅎㅎ..
참 많이도 먹어요
만주벌판을 내려다 보고 있는 김일성 같다
이리 글쓰고 나니 옛적 군대때 들은 북한 방송이 생각난다
한북정맥의 남한땅 끝산 삼천봉(815고지) 정상에서 북한을 내려다 보며 직접 들은 방송이다
'그때 김일성 수령 아바이는 백두산 정상에서 만주벌판을 내려다 보고 계시었다
만주벌판에서는 말을 탄 일본병사 하나가 달리고 있었다
수령 아바이께서 얏! 하고 한번 고함을 지르자 말의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를 않았고
수령 아바이께서 얏! 하고 두번째 고함을 지르자 수령 아바이의 몸은 어느새 백두산 정상에서 만주벌판에 내려서 계셨다'
그 다음?
일본 병사가 억수로 얻어 터졌겠지 뭐~
아가들이 이 날은 자기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를 십분쯤 떨어져 오게 한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덕분에 뚜버기와 깊이 사색하면서 EDPS의 즐거움을 원껏 누릴수 있었다
내 진짜로 길치 맞는갑더라
저쪽 맨 뒷산을 보면서 "뚜버가~저그 저 뒷산이 무슨산이고?"
참으로 눈이 휘둥그래 질만도 하지
"야이 바보야...어제 넘은산 아녀?"
아~ 편하데
우리가 당도하면 자기들은 또 10분 뒤에 오라며 먼저가고....
그야말로... 처~엉~산~~~싶데
앉아 쉬기 좋을거 같아서 걸터앉아 보았단다
이제 반쯤이나 왔을 터인데 또 잠이 온단다
아마 50분이나 재웠다지
물론 나도 같이 잘 잤다
북바위란다
예전에 처음 대간할때 연속종주하는 사람을 만나 중재에서 육십령까지 세월아네월아 걸으면서 맛나게 쉬었던 생각이 났다
동네북 할때 북인지, 삼베 짤때 그 북인지, 아니면 누가 북을 들고 올라와 북치고 놀기 좋다고 북바위라 하는지 뚜버기와 한참이나 이런저런 짐작을 해본다
저 아래가 논개 생가란다
혜지가 뒤쳐진다
그려 힘들만도 할게다
뚜버기 그런 혜지를 잠시잠시 안아다 준다
저걸 희라가 안봐야 되는데...
밋밋한 고개라서 민령이라고 한다나~
꿀풀사이로 부녀의 딴짓
이제 깃대봉만 오르면 그나마 한결 수월해진다
희인과 혜인은 뒤쳐져 보이지도 않고 희라와 혜지도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순간모면 이벤트~
갈대를 꺽어 칼싸움하며 무난히 올라왔다
본시 이 산은 깃대봉이라 하였는데 어느 풍수지리가가 산의 형국이 구시형이라 하여 2006년부터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다
그 사연이 좀 어리둥절하기는 하다만..
구시형은 짐작컨데 가운데가 오목히 파진형상을 말하는 듯 싶다
당초 깃대봉의 유래는 여그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로서 그 아래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깃대를 꽂았다고 그리 이름하였다 한다
또한 옛날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땅을 사패지라 하였는데 그것을 표시하고자 깃발을 꽂았다는데서 유래하는 것과,
일제가 국토를 측량하면서 높은산에 깃발을 꽂아 표시한데서 유래하였다는 것 등이 있다
어쨌거나 구시봉보다는 깃대봉이 부르기도 그렇고 좋지 않나~
두 깃대봉 사이의 오목한 안부
깃대봉샘에서~
자..이제 남은 먹을꺼리 다 해치우고 내려가자
좀 믿기지 않지만 이날 막판에 내가 퍼졌다
저번주 경기 휴유증이 남아 있는겐지 정말 힘들데
아가들이 신기할 정도라
17:23 육십령 도착, 8시간도 훌쩍 넘었고나
대단한 아가들이여~
만세~~~
육십령의 유래에 대하여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산꾼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걸 그대로 옮겨 적자면,
'산적이 많아서 함부로 넘지 못하고 산아래 주막에서 육십명이 모일때까지 몇일씩 묵으면서 기다렸다가 몽둥이와 죽창으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화를 피했다 운운...'
표현이 참 웃긴다
육십령 할매와 오랫만에 정감을 나누며 할매국수 한사발씩 묵고는 진주로 서울로 헤어지다
오다가 억수같은 소나기다
오늘까지도 아가들은 다리 아프다는 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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