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짜 : 2013. 2. 14 ~ 2. 17(3박 4일)
0 동행 : 이교수님
1. 일본 북알프스 카미코지로 스며들어 설산을 제대로 맛보자
2. 한라산 삼각봉에 스며들어 베이스 캠프를 설치 후, 한라 동릉을 맛보자
3. 낙동정맥 삼수령 들머리에서 시작하여 갈때까지 가보자
4. 한계령에서 기약없이 남진하자
5. 대관령 목장구간을 가로질러 보자
6. 대관령에서 구목령 방면으로 기약없이 남진하자
7. 소백산을 가로 지르자
그 많고 많은 계획들이 끝없이 이어지다 스톱~
내 가자는 대로~
하여 출발 하루전날 저수령에서 시작하여 도솔봉으로 향하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참 잘 선택한 산길이었다
미리 서둘러 출발함에 저수령에 이르니 아직 시간이 한가하다
이날은 야영을 접기로 하고 민박으로 지내기로 한다
저수령은 추억이 참 많은 곳이다
그래서 더 아련한 산행이었다
딸내미들과 백두대간 당시 황장산을 지나 벌재에 이르러 도로를 따라 저수령으로 이어 가기로 하였다
마을 어귀에 이르니 마당에 갤로퍼 짚차가 있길레 별 기대도 없이 혹시 택배도 하냐고 물었었다
당근 바래다 주신단다
이번에도 그 집을 생각해 내어 다음지도로 검색하니 바로 나온다
연락처를 알아 미리 연락 드리니 민박도, 식사도, 죽령까지의 택배도 가능 하단다
사진 누질르면 전화번호도 잘 보인다
인터넷으로 장기 두시는 아저씨 잠시 기다려 이교수님 차를 죽령에 두고 오기로 한다
죽령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망해 가더니 이전보다 훨 활기가 넘친다
민박아저씨와 정답게 둘러 앉아 소백산 막걸리 큰되로 한통 비우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절간이 하나 있다
꽤 유명한 암자더라만 이름이 생각 안난다
주변 동네 사람들은 이 암자로 인하여 호구를 해결하고 산단다
죽령에서 마신 막걸리에 약간씩 취기를 느낀다
한숨 때리기로 한다
방은 따로 없고 그냥 식당에서 밥 먹고 그대로 이불 깔아 자면 된다(방도 뜨끈하다)
죽령까지 택배하고 다음날 아침 저수령 데려다 주는데는 3만원이라 미리 이야기 되었다
저녁에 오리 불고기에 소주 서너병, 그리고 다음날 아침 황태국 정식, 숙박비까지...
얼마 드리면 되냐니 11만원만 내란다
널리 알려서 이용을 권장할 만한 집이다
아침 8시쯤 산행을 시작한다
일단 목적지는 흙목 정상쯤이다만, 별다른 확정도 없다
가는데까지~
러셀이 안 되어 있다
원껏 눈을 밟고 싶다더니 소원대로 되었다
이교수님하고 산행하려면 원만한 내공으로는 안된다
진주에서 출발하여 한시간 지나려니, '아차~ 파카를 안 가져왔다'
죽령에 차를 두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아차~ 스틱을 안 가져왔다'
쉬었다 출발하는데 챙기는 시간만 10분은 보통이고,
그날밤 야영지에 도착하여 텐트 설치 하는데 딱 2시간 40분 걸리더라
다음날 배낭 챙기는데도 거진 3시간 가까이 걸리는 듯 했다
내 성질이 별로 느긋한 편도 아닌데 이런 스타일하고 아무런 트러블 없이 다니는거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평소 곰돌이 한테 단련이 많이 되어 그런 모양이다
지난 구간 옥녀봉을 돌아보니 정신이 아득하다
그때 벌재에서 도로를 따르지 않고 저 산을 넘었다면 딸내미들과 더불어 제법 낭패를 보았을 터이다
그러고 보면 이교수님과 뚜버기는 무대포 기질이 닮았다
둘이만 붙여 놓으면 아마도 제대로 구경거리 만들고도 남을게다
매직을 꺼내어 착하게 수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나아간다
러셀이 안된 상태라 진행이 생각보다 더디다
일부러 골탕 먹일라고 앞세우곤 하다
세월이 30년이 훨씬 지났는데 만날 대학교 산악부때 기준으로 산을 판단하고 계획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본인에게도 자주 말하지만, 그 목숨을 많이도 살려줬다
시속 800m
대략 적설은 1m 쯤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습설의 지경은 아니라는 게다
좀 더 진행하다 보면 반드시 빼 먹고 오는게 하나쯤 더 나타날 터이다
다행히 식량은 내가 다 준비 해 오기로 하였으니 굶을 걱정은 없다
저쪽 구석으로 돌아댕기던 차 키는 아침에 챙겨 주었고,
산으로 들어가서 보니 4홉들이 소주 한병을 빠뜨리고 왔다
진주에서 분명히 같이 장을 보았는데 소주는 산 적이 없다고 주장하더라
눈길을 뚫고~
잣나무 숲을 지나서 점심을 먹으리라 예상하더니 그건 어째 제대로 적중이다
등로를 잠시 벗어나 바람 쉬는 곳을 찾아갔다
이번에 혹시나 싶어 삽을 지고 갔다
정말 제대로 쓰 먹었다
야영지 만들고 부엌 공간 만드는데 없었으면 욕볼뻔 했다
카메라 거치대로 사용하니 그럭저럭도 하고~
2월 눈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라면 두어게 끊여서 소주 한병 맛나게 비웠네 그려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나아가는 좌측으로는 도솔봉 능선이 멋드러지게 조망된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배낭을 내리고 톱을 꺼내어 한참이나 이리저리 톱질을 했다
사정도 모르는 이교수님은,
'그 벼랑에다가 어찌 텐트를 칠 것이라고 그 짓을 하고 있나'
'저 아래 편편한 곳에도 땔감꺼리는 많다'
작업이 끝난 후,
'씨부리지 말고 이리 올라와 보소~'
두둥~~~~
내 마음의 산, 도솔봉......
7시간 동안 5km나 진행했나
싸리재로 추정되는 곳에 헬기장 인 듯한 눈덮힌 공터가 있다
그예서 하룻밤 묵을 여정으로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이교수님은 저쪽에서 한참이나 삽질을 하시더만, 다시 내 옆쪽이 마음에 든다며 다시 삽질을 시작한다
텐트를 설치하고 양식거리를 챙기며 보니 이교수님이 파고 있는 자리가 부엌으로 사용하면 딱 맞겠다
그런 의견을 보이니 바로 그 자리를 부엌으로 내 놓으시고 처음 파던 곳을 다시 판다
어쨌거나 이교수님은 삽질 시작한지 근 3시간 만에 텐트를 설치 하신다
생각보다 기온이 차겁지 않아 밤이 이윽할 무렵까지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다
술도 달랑 이거 한병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아껴진다
다음날 일어나 밥을 짓는데 이교수님은 분명히 일어나 안에서 꾸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한시간쯤 지나도 나오지를 않는다
밥 드시자 뭐 하시냐니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하신다
'에어메트 수납외피가 작아서~ 작아서~'
그러니깐 안에서 그거 한시간이나 넣으려고 낑낑대고 있는 모양이다
기상한지 3시간만, 거진 10시가 가까워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역시나 오늘도 러쎌조는 우리가 될 모양이다
한데 다행스럽게도 흙목 정상쯤을 노리는 산기슭에서 나무에 기대어 도솔봉을 보고 있으려니 산악회 대간팀들이 우루루 오신다
'러쎌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잘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하시면서 힘차게 앞장 서신다
밤도깨비성 추백 리본이 종종 있다
우리는 저번에 흙목에서 중간 탈출 했었고, 또한 그때 표지기를 잊어먹고 온 모양인지 진행한 구간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표지기 제대로 곳곳에 다시 달았다
흙목 정상에서 아침밥인지 점심밥인지 드시는 대간팀들에 섞여 휴식하고 있으려니 이교수님 생각보다 빨리 따라 붙었다
그 정상에 서 있으려니 딸내미들과 백두대간 할 때의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나는 이제 혼자서는 대간길을 못 걷겠다
나무 한그루, 바위 한덩이를 보아도 딸들과 지나던 그때가 아련해져 어쩔때는 눈물조차 글썽해지더라
이 그리움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짠해지리라
앞에서 러쎌을 해 주시니 세배로 쉽다
헌데 이 무리중에 울산 영알팀 권총무님이 계셨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서로 알았다
도솔봉과 묘적봉 능선이 더 성큼 다가선다
오늘은 기어코 도솔봉에서 하루밤을 보내리라 하며 이교수님 뒤로 남기고 혼자서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대간길을 걸으시는 아줌마 3인방이다
제법 내공이 보이는 팀이었다
이곳에서 뒤따라 오시는 이교수님 혹시나 묘적령으로 빠지실까 싶어 대간길로 표지기를 하나 달았다
단체 산악회 대간팀 중에 다리가 불편하다며 묘적령으로 빠지신다는 여성 두분이 나보고 객꾼이냐고 묻는다
여차저차하니 권총무님 이시다
쩝~
권총무님이랑 사진이나 한장 찍을걸, 낯 모르는 여인들과 찍고 말았네
묘적봉에 이르렀다
아마도 이교수님은 두어시간 뒤에 오시리라 예상한다
풍기면 조망이 좋다
예서 계속 진행하느냐 이교수님을 기다리느냐다
묘적봉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그때까지 점심을 먹지 못했다
배가 너무고파 머리속이 하애질 지경이다
생쌀이나마 조금 먹을까 하다가 틀림없이 뒤따라 오는 이교수님은 소지한 라면을 끊여 드시고 오시리라 싶다
그렇다면 나도 일단 밥이나 해 먹고 보자
묘적봉에서의 그 밥맛,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란게 그를 두고 이른 말일게다
밥을 먹고나니 머리속이 정리가 된다
그 꾸물거리는 양반이 4시가 가깝도록 아직 나타날 기미가 아니 보인다는 건 한참 뒤에 있다는 게다
도솔봉까지 진행 못할 경우도 없지만 그건 쓸데없는 고생이다
내 텐트 설치하고, 이교수님 텐트자리까지 파 놓고, 부엌자리도 파 놓고 한창 밥 하고 있으려니 저 저쪽에서 기미가 있다
도솔봉까지 가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셨다며,
묘적령에서 라면 끊여 먹고 아예 목에다 렌턴까지 걸고서 거진 6시가 가까울 무렵에 나타나신다
우리 묘적봉에서 한창 저녁 짓고 있을때 지나간 사람이다
도솔봉 이 자리에서 자주 야영을 하는 모양이라
그 야밤에 홀로 이곳으로 향하다니 극히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리라 싶다
나도 조만간 저 자리에서 한밤을 보내야지
도솔봉정에서 지나온 대간길 조망
소백산정
참으로 감회가 깊다
도솔봉 정상석을 보니 마치 딸 만나는 듯한 심정이더라
내 아직 딸들을 시집 보내지 아니 했지만 필시 그 후에 만나는 느낌이 이와 비슷하리라
앞으로 도솔봉석을 내 셋째딸 삼아야 겠다
2005년 2월에 져 올랐으니 어언 8년이로구나
민가는 같이 져 올리고서도 아직 정상석 저리 선 모습은 현장에서 보지 못했다
민가야~
언제 같이 한번 가야지 하다가 세월 다 보내겠다
도솔봉은 조망이 정말 좋다
월악상 영봉 방면~
이번에 내려 오면서 내 꼼꼼히 길을 살폈다
미친놈들~
정말 그 산길로 우째 54kg이나 나가는 돌덩이를 져 날랐을꼬
전망대에서 저수령 방면
또 다른 전망대에서 소백산 방면
형제봉 지나 죽령으로 내려오는 사면에는 눈이 특히나 많다
스키나 비료포대 있으면 죽이겠더만
혼자 앞서 내려 오는데 자작나무 한그루 있다
갑자기 그 나무 곁으로 딸들이 뺑 둘러서 껍질 벗기던 장면이 오버랩 된다
딸들이 제일 어렸을 적의 모습으로 말이다
희한하데
나무를 보고 눈물이 핑 돌다니~
샘 이름은 잊어 버렸다
벌써 이틀째 물 다운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이교수님은 한참이나 뒤쳐져 있을 터 일부러 삽들고 내려고 파 보았다만
물은 없더라
이런 오르막이 몇개나 반복 되는데 용타
어째 정말 지고 올랐을까
홀로 추억에 젖어 날머리까지 갔다가 일부러 되돌아 왔다
한참이나 되돌아 오니 이교수님 그때서야 나타나신다
난 정말로 이제 대간길 못 다니겠다
자꾸만 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리움이 너무 심하다
두부 전골에 소주 한병 비우고 풍기로 향하다
풍기온천은 현재는 망했다
참 좋은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