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천왕봉에 유하다

객꾼 2022. 4. 12. 18:28

아가들은 왜 사진을 찍을 때 눈을 감을까

난 이게 연출인 줄도 모르고 처음에는 사진들을 다 지웠었다

매화가 필 무렵 매년 가는 길, 올해는 벚꽃에 맞춰 보았는데 날이 딱 맞다

 

희라가 왔다

딸들이 다 집을 나가니 두가지 변화를 느낀다

일단 옺걸이가 빈것이 많아 옷 걸기가 편리해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십 수년만에 샤워하고 새 수건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이 살때는 수건걸이에 보통 3개 이상의 수건이 걸려 있었다

목욕탕 여자방에 왜 수건을 2개로 제한하는지 이해되는 것은, 이놈들은 대충 닦고 다시 새수건 꺼내 닦고 또 새수건 꺼내 닦고 그러는 모양이더라 

 

 

퇴직자 모임이 있다

나는 현역인데도 넣어주는 것은 아마도 술 분위기를 잘 맞춰주어 그런 모양이다

난데없이 천왕봉에 한번 데리고 가 주란다

세상에 제일 쉬운 부탁중에 하나다

 

 

자신이 없어 빠지고 일정이 있어 빠지고 세분으로 압축된다

알고 있는 제일 쉬운길로 올랐다

물론 출발전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곡차 한잔의 즐거움은 드렸다  

 

여기 이 자리에 24살 무렵 텐트를 치고 1주일을 보낸적이 있었다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지나던 국립공원 직원이 텐트를 발로 툭툭 차면서, 이 자리가 좋은줄 알고 집을 지었냐

여기 이자리에 누가 텐트를 쳐놓고 자살한 곳이다 카데

지금 생각에도 그 젊은 혈기에 어찌 참고 있었는지 신기하다

무덤 자리가 다 좋은 자리드키 이 자리에서 사람 죽었으면 명당이 맞네^^~ 

 

당초 올라갈때 천왕봉에서 삼겹살 구워드린다 하니 세상에 그런일이 있을 수 있냐며 신기해 하시더만,

나중에 진주에 올때까지 일생에 그런 경험을 갖게 해주어 너무 고맙다는 치사가 끝날 줄 모르더라

그날밤 막걸리 한잔 거하게 사주시며까지 고맙다는 말이 계속되더만

지리산 덕분에 내가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3년도 더 되었제

서울사는 박꾼이 지리산 한번 가자는 이야기가~

세번인가 약조가 깨어지고 나서야 겨우(이교수 막걸리 마시러 농장에 오셨다. 내일 쓰야지~) 날잡았다

서울에서 일부러 지리산 왔다는 것은 천왕봉 가자는 것 아닌가

덕분에 내리 3주를 천왕봉으로 오르고 있다

(방금 진주아제님 전화 오셔가 하시는 말씀이 이번주 천왕봉 가서 자고 오잔다. 내가 처음으로 산을 고사했다^^)

 

거북이 식당에서 막걸리를 두되나 마시고 올랐다

시간이 많으니 너무 널널한 산행이다

이왕 가는김에 법계사 옛길로 오르기로 했다

어느 비구니 스님이 법당안에서 홀로 염불을 하고 계신다

아주 한참이나 스님 염불소리 들으며 문간에 서 있었다

 

 

이런 그리운 시간들이 있었다

한때 꽃에 빠져 산보랴 땅보랴 바빴는데 오랫만에 꽃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가 막걸리 마시기 정말 좋더만

박꾼이랑 둘만의 산행은 처음이다

건데 그 친구가 생각보다 술을 좋아하더만(좋쿠로^^~)

 

 

법계사 옛길이 그렇게 어려운 길이었나

이 지점까지 나오는데 제법 길잃어 헤맸다^^

 

 

우리가 산길을 걸으며 즐거운 이유중에 하나는,

친구야 천왕샘 아래 쉼터에서 남은 막걸리 두병 비우고 가자는 약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지리산 구상나무들은 거진 다 죽었다

이유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나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냥 45억년 지구가 돌아가는 어떤 시점에 우리가 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녀가 생각나는 곳에 서니 또 그녀가 생각나는구나

정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그녀랑 같이 살아 왔다면 지금보다 행복 했을까

그럼 우리 딸들은 누가 낳았을꼬?

내가 예전에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이 생각은 언제까지 납니까?

네 죽을때까지 안고가야 할 생각이다

 

 

요즘 상봉 정상석과 벗하여 사진 많이 찍누만

박꾼이 유튜브를 하던데 그 동영상을 보니 우리가 이곳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더만

물론 대부분은 기억에 없더라

 

 

하늘색이 변할때까지 정상에서 놀았는 모양이다

 

 

남릉 그 자리로 가다가 불쑥, 어이 그냥 이 자리에 잘까

친구도 흔쾌히 동의한다

내 제대하고 23살 무렵 지리산 종주하는 길에 이곳에 야영하고 처음이다

그때 옆에 집을 지은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이제껏 세상 살면서 그렇게 역마살 많은 사람 만나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여행이라는 게 그리 흔하지 않았는데 전국에 안 다녀본 산과 안 다녀본 섬이 없더만

그 친구는 속세에 제대로 정착하고 잘 살고 있을까

혹시 올라 오다가 법계사에서 염불하던 그 비구니 스님이 그 친구는 아녔을까^^

 

 

어이 내 나고 처음으로 산에 술 묻어두고 가겠다 하였는데, 다음날 보니 반병 남기고 다 마셨더만

이 후라이팬도 쌈장이 준 것이구나^^

 

 

 

나는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는데 박꾼은 일출보러 갔더라

일체가 유심조는 살아보니 맞는 말이더라

 

 

완전 노숙자가 따로없군

자다가 문득 깨어보니 눈앞에 별이 초롱초롱 한거라

어? 뽀때님이 주신 이 텐트가 투명텐트 였나 싶었지

내 산에 댕기다 텐트 바람에 넘어진 경우도 처음이군

태풍속에서도 그런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비몽사몽중에 짐을 챙겨 내려왔다

나는 이번 산행을 기점으로 앞으로 산에서는 아침술을 절대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믿는 사람은 거진 없을 터이다만

 

 

박꾼의 시그널~

농장에 하나 걸아 두라며 하나 더 챙겨주는 장면도 좀 유머스럽지 않나^^

 

 

내려오는 길,

올라오는 덕불고를 만났다

그리하여 이 자리에서 약 열사람을 만나며 그야말로 영화를 찍었다

만나다보니 작은딸 대학병원에 병원장님급 교수님도 만나지더라

참 사연이 많다

그 교수님은 한번 연락드려 차후 산행기에 등장시켜야 겠다 

 

 

통나무님이 보내오신 사진,,

문득보면 정상석 위에 서 있는 모습같다

저런 뷰로 찍은 사진은 처음이다

 

 

수곡사 스님이 된장 담그러 오시란다

하산하자마자 절간으로 달려 하루 가득 봉사한다고 즐거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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