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아래 굴이 하나 있단다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여 산으로님께 청해 같이 길 나섰다
간밤에 숙취가 심하여 생전 안하던 짓을 하다가,
마누라에게 산약속 깨는 사람이 제일 밉다더만 자기가 그러고 있네 지적질 받고서야 다시 나서기로 하였다
철모 삼거리 지나고, 다음 고랑에서 물을 긷고서 하봉 동릉길로 접어들었다
수낭을 미쳐 챙기지 못했던데 그냥 비닐에 담아 꽉 묶어 리엑터안에 넣어가도 대충 변통은 되더라
한바가지쯤 땀을 흘리고 나니 겨우 정신이 돌아온다
조개골 참 오랫만에 오지 싶으다
예전에는 천왕봉 가는 기본코스를 조개골로 잡았었는데, 하봉 동릉도 예전에 올라본 듯도 하고 처음길인가도 싶고 그렇다
나이들어서는 가까이서 얼굴사진 찍고 그러는거 아니라던데 그냥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고 해 두자
나는 정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널브러져 있는데 산으로님 저쪽에 가서 표고버섯 따 오라신다
이 계절에 무슨 표고일꼬 싶으며 시선을 따라가니 여름표고가 몇개 달려있다
이제껏 이렇게 보송보송한 표고는 지리산에서는 처음이다
맨날 물을 꼬옥 짜내고서야 먹었던 물표고들만 만나왔는데 말이다
제일 큼지막한 놈 하나 반으로 쪼개어 날로 먹고 있으려니 너무 맛이 강렬하다
표고버섯엔 알레르기 있다
아주 조금 맛만 봐야지 배부르라고 먹다간 가려워 난리난다
한가지 확실한건 하봉 동릉길이 천왕봉 동릉길보다 몇배는 힘들다는 것이다
기억이 날듯도 말듯도 한 길을, 한번 올랐고 한번 내려온 적이 있다는 산으로님 조차도 제법 헤멘다
더구나 나는 근간에 폰을 바꿔 오륙스를 아직 깔지 못하고 있었다
별로 게으럼 피우지도 않았는데 능선까지 붙는데 딱 4시간 10분 걸리더만
우회로도 없이 그냥 날등을 째고 오르는 식이다
그 길에 벌나무가 유독 많다는건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일게다
참 적절하고 리얼한 표지기다
나도 표지기가 두종류나 있고 아직 남은 여분도 많은데 이상하게 그거는 달고 다니기 쉽지 않다
이런 산길에서는 달아주면 도움이 아니되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
이 길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점은 산죽밭이 아니라 온통 단풍취나 그늘사초 밭이 많다는 것이다
숲이 참 깊다는 생각이 걸어 오르는 동안 내도록 든다
뒤따라 가며 보니 산으로님 기억을 더듬어 갔다가 되돌아 오고,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오륙스 켰다 참조하고 아주 길 찾는다 욕을 보시더만
이런 곳을 우리는 별 생각없이 개구멍이라 하지 않나
예전에 미국처자 뱃시랑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을 지나는데 딱 어울리는 바위틈 개구멍이 있는거라
짧은 영어에 도그 홀 이라고 하니, 옆에서 걷던 이교수도 눈치없이 도그 홀을 따라하네
그 순간 뱃시의 낯빛을 살짝 보았지
똑똑한 아이이니 악의는 없다는 걸 느끼는거 같으면서도 표정 묘하더만
하산해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그거 엄청 큰 욕이라더만
나는 지리산 고사목들이 말라 죽어가는 현상을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인정 하는걸 애쓰 피해왔다
문박사 실태조사에 의하면 오히려 세석 방면에서는 자연산 구상나무들의 식생이 활발해 지고 있다는 건 예외로 하고,
겨울이 필요이상으로 고온이면 상록수들은 증산작용을 멈추지 않는단다
겨울 기온이 적정한 저온이어야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멈추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증산작용이 지속된단다
당연히 그 과정에 수분이 필요한데 공급이 안되거나 부족하니 식물이 고사하는 경우란다
같은 이유로 예전에는 소나무 같은 종류는 겨울에 옮겨 심었는데, 관수를 할수 없는 상황이라면 봄철 싹트기 전으로 시기가 바뀌 었단다
그렇거나 말거나 의견을 말하자면, 지리산 구상나무 말라 죽는현상은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봉 동릉은 마지막까지 길을 제대로 내어주지 않더만
능선에 닿았다고 느껴지는 지점에서도 한참이나 진행하니 무덤이 나타나데
영랑대에 앉으니 사방이 흐릿하고 바람 한점 없이 후덥지근하다
산중이 이럴진대 오늘 속세 제대로 덮겠구나 하였다
다행히 비닐속에 묶어온 물은 그대로다
천왕봉도 안개속이다
밥을 먹고서 정자세로 오침을 즐기려는 산으로님 각성시켜 후딱 하산하여 산거북이 만나기로 하지 않았소 하니,
아차 항시 그렇다면 서둘러야 하리
나는 하봉굴이 어디있는지 심히 궁금했다
내가 수십번도 더 지나다닌 그곳에 있더만
누구는 소년대굴이라고도 하고 그렇다
누군가 최근에 바닦에 반으로 쪼갠 통나무를 깔아 대충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여차하면 침낭커버 덮고 둘은 눕겠다 하니,
겨울날 그 북풍은 우쩔 것인가 하기로 업굴처럼 시멘트 못 박아 타프치면 되지요 하니 고개를 끄떡이신다
저곳도 치우면 한자리는 나오겠다
다만 이 지리는 우천이면 비 새겠더라
내가 그리 중얼거리고 있으니 산으로님 왈, 저 돌은 원래 있던 돌이 아니고 천정에서 떨어진거 같은데 하신다
자다가 돌 맞을짓 하지 말라는 의미일까^^
상봉이 바로 보인다는 것과 같이 바람 제대로 몰아 치겠다
이 굴을 일러 누구는 또 소년대굴이라고도 한다
산으로님은 아무렇게나 부르란다^^
여긴 애초에,
누군가가 큰일보러 왔다가 발견했지 싶다
벌써 얼마나 다녀 갔던지 길이 반들반들 하다
하봉 옛길 구상나무들은 두드러지게 말라 죽었다
정말 원인이 뭘꼬?
주능을 되돌아와 마암에 들렀다
내친김에 마암석굴도 보러 가자고 했다
이 즈음 몽블랑에 가 있는 뽓대님에게서 전화가 오셨다
여차저차하니 아이구 오지랖아
몽블랑이나 구경할 것이지 그곳을 행랑굴이라고도 한다며 무슨 설명을 하신다
산으로님은 자기가 본 굴 중에 이곳이 제일 기운이 맑더라 하더라만 나는 단연 열번쯤 잤던 업굴이다
이곳은 마음 먹고 2단으로 잔돌을 정비하면 제법 그럴듯한 토굴은 되겠더라
저 안에 꼭 호랑이 눈깔 같다
그 말이 나온김에 궁금하여 알아 보았다
지리산에서 호랑이 봤다는 이야기는 63년, 87년, 그리고 그 중간쯤 또 하나 있더라만,
불일폭포 아래 산장이 하나 있지 않나
예전에는 텐트장도 제법 넓게 운영했던 곳,
그 산장이 올해 50먹은 우리 농장 연구사가 초등학교 가기전까지 자기 집이었다는데,
자기 아버지가 그쪽 면사무소 계장으로 정년퇴직 하신 분인데 아버지께 한번 물어보라 했지
혹시 그곳에 살때 호랑이를 보았거나 보았다는 이야기 없었는지~
그 아버지 말씀이 1970년 이후 호랑이 보았다는 이야기는 삵을 잘못 보았거나 헛것을 봤거나 란다
트랙 따르니 더 헷갈리더란다
굴 아래쪽으로 작은조개골로 막무가내로 째고 내려왔다
아주 잠시 내려오니 계곡 만나더만
그날 둘 다 물을 500ml 정도만 가져간 바라 물을 아주 아껴 마셔야 했다
아따 물만난 김에 어찌나 달게 들이 켰는지 내 고마워서 사진 한장 남겼다^^
산으로 다니다 보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물이다
비로소 계곡다운 곳을 만났는데,
지도에는 이곳이 기도처로 되어 있단다
무슨 기도 드릴만한 곳도 아니더마는~
내 예전에 이곳을 처음 보았을때 미쳐 못찾고 있는 청학동이 이곳인 줄 알았다
우리는 물건도 닳아 떨어질때까지 쓰고, 한번 찜한 곳은 아예 뿌리를 뺀다
저 뭉실한 바위 위에 텐트를 어찌칠까
텐트 4면에 돌을 달아서 늘여뜨리면 아주 훌륭한 박지가 된다
지리산에서 이 만한 넓이의 소도 별스레 드물지 싶다
왔다갔다 수영훈련이 될 정도다
셀카로도 된다^^
여름날 이리로 찾아들어 하룻밤 유하고 가면 정말 직인다
실컷 놀고서 올라오니 산으로님 오침 중이다
옷은 빨아서 널어 놓았더라
오랫만에 병아리 부화 일곱마리 성공했다
격리가 관건이다
알을 품어서 태어난 닭들은 자기가 어미닭이 되어서는 또 알을 품는 습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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